15년 전 가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가지 못했다. “집안에 큰일을 앞두고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는다”라는 말 때문이었다. 미신인지 유교 문화인지, 증명되지도 않은 무언가. 거기다 어머님도 “갈 일이 있었는데 안 갔다”라는 말에 더욱 갈 수 없었다. 가지 말라고 못 박은 건 아니었는데, 안 가는 게 맞는 것 같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마음의 방향을 막았다.
할머니는 50년 가까이 혼자 사셨다. 교회에서 사람을 사귀고, 기도하면서 위안을 얻으셨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과 외로운 마음을 신자들이 채워줬다. 그들만큼은 할 수 없었지만, 언니와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할머니 댁에 들러 적적함을 달래 드렸다. 한 지붕 아래 두세 가족이 사는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귀퉁이에 작은방이 하나 있었다. 원룸을 쪼개 방과 부엌을 만든 것 같은 집.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도시 안에 아직 이런 집이 있나’ 싶은 곳이 할머니 집이었다. 음지에 있어서 더 외로워 보였다.
할머니는 내가 갈 때마다 계란찜을 해주셨다. 뚝배기에 그득하게. 요즘 말로 하면 화산 계란찜. 부드러운 입자에 구멍 하나 없이 완만하게 솟아오른 찜은, 한 입 먹으면 또 손이 갔다.
내가 어릴 적부터 할머니는 몸이 좋지 않았다. 약봉지를 늘 달고 사셨고,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약 드시는 시간이 식사시간보다 길 때도 있었다. 집 근처 병원을 오가며, 어느 순간부터는 1년에 절반은 병원에서, 절반은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아프다기보다 외로워서였을까. 사람 많은 곳,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에 있고 싶어, 퇴원해도 된다는 의사 말을 거부하고 병원에 머무는 걸 택했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상의 끝에 외삼촌이 아는 분이 운영하는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거기서 더 악화된 걸까.
그날, 나는 근무 중이었다. 저녁 스케줄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아. 오늘을 못 넘기실 것 같은데 올 수 있겠니?” 이제 막 대전을 지난 참이었다. 부산을 찍고, 다음 날 오전에 다시 서울로 갔다가 또 내려오는 1박 2일 일정. 부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임종 소식을 들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승객을 마주하고, 안내하고, 웃어야 하는 직업 때문에. 얼굴 밖으로 티 내지 못한 채 모든 눈물을 마음으로 쏟아내고 삼켰다.
그다음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나는 장례식장에 갈 수 없었다. 도련님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지 말라’는 말은 없었지만, ‘오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말이 내 발을 묶었다. 지금처럼 결혼 15년 차였다면 갔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을 지킬 줄 몰랐다.
그 후로 나는 할머니 산소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장지가 어딘지 몰라서, 아이들 키우느라 바빠서, 교인이 아니라서. 못 가는 이유만 만들어댔다. 작년부터는 “이번 달엔 꼭 가야지. 추워지기 전에 가야지”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묵은 숙제처럼. 이번에도 못 가면, 그건 못 가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안 가는 거다.
오늘, 엄마와 나섰다. 네비가 안내해 준 곳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아닌데. 이런 곳이 없었는데.” 밑으로, 위로. 한참을 돌아도 찾을 수 없었다. 표지판을 보니 다른 교회에서 관리하는 공원이었다. 같은 이름의 공원이 두 군데였고, 할머니가 계신 곳은 네비에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교회에 전화해 다시 주소를 받았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두유를 샀다.
“내가 너무 안 찾아와서 할머니가 괘씸죄로 돌고 돌아오게 했나 봐.”
“할머니가 두유 사 오라고 그랬나?”
20분을 달려 도착한 묘원은 전반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할머니 장지는 볕이 잘 드는 팔각정 근처에 있었다. 돌아가신 뒤 일주일쯤 지나, 꽃분홍색 옷을 위아래로 입고 내 꿈에 나타나셨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잘 있어. 잘 지내고 있으니까 울지 마.”라며 나를 안아주시던.
엄마가 잡초를 뽑는 동안 나는 막걸리를 따르고, 두유에 빨대를 꽂았다. 그리고 같이 절을 했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그칠 비가 아니었다. 얼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내려가기 전, 낮은 못소리로 말했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다음에는 애들 데리고 인사드리러 올게요. 그때까지 편하게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