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이 J가 되어 있었다

by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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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검사를 할 때마다 ENFP가 나왔다. 외향적이고,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사람. 결과지에도 나라는 사람이 그대로 담겨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들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혹시 J예요?" "T 아닌가요?"

나는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사람이라고, 계획 같은 거 딱히 세우지 않는 성격이라고 하면 "아닌데, 다시 해봐요?"라는 반응이 더러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내 성격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건 맞다. 정확히 말하면 성격이라기보단 하루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쓰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다. 바카라을 내보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는 스스로 일정을 만들어 나갔다. 초고는 언제까지, 1차 퇴고는 언제까지, 투고는 언제부터 등. 종이에 적고, 여기저기 선언하고 다니며 스스로 가두리도 만들었다. 혼자 만든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조급해졌고, 24시간이라는 시간도 쪼개어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다. 내 손으로 내 하루를 설계하며 살기 시작한 게.

가끔씩만 펼쳐서 끄적이던, 빈 공란이 가득한 날이 더 많았던 다이어리는 스마트폰만큼이나 늘 지니고 다녔다.


아침 수영을 시작하면서는 더 촘촘해졌다. 6시엔 수영장에 도착해야 했다. 그러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고, 전날 몇 시에 자야 하는지가 자동으로 계산됐다. 그렇게 오전 시간부터 계획적으로 살아갔다. 작년 8월. 발가락 수술 후 수영은 그만뒀지만, 눈 뜨자마자 늘 운동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유튜브를 켜고 20분 동안이라도 몸을 풀어야 하루를 시작하는 리듬에 익숙해졌다.

이어서 오늘 할 일을 다이어리에 적는다. 전날 저녁에 내일 할 일을 미리 써두기도 한다. 한 일엔 동그라미, 못 한 일엔 미뤘다는 표시를 달아두고, 다음 날로 넘기며 하루를 리셋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 중간고사 준비를 도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다이어리를 쓰지 않길래 달력을 가져다줬다. 시험까지 남은 날들을 펼쳐놓고, 매일 뭘 공부할지 직접 적게 했다. 아이는 본인이 적은 대로 해나갔다. 계획대로 해나가는 아이를 보니 안심됐다. 제대로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획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 불안함이 덜어지는.


한동안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밈이 있었다. “나 우울해서 오늘 치킨 시켰어.”라는 말에 오는 반응을 보며 t형인지, p형인지 체크하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왜 우울해?” 하고 물었는데, 다른 사람들 반응은 달랐다. "우울한데 왜 치킨을 먹어?", "무슨 치킨 시켰는데?", "밤에 먹으면 살쪄!" 어떻게 그런 반응을 할 수 있냐던 내가, 그러한 반응을 이해하게 됐다. 차갑고 논리적인 사람으로 변했다는 건 아니다. 상대의 감정과 상황을 보는 비율이 비등비등해졌다는 거.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어느 날 보니 그랬다.


오랜만에 MBTI를 다시 해봤다. ENFJ-A가 나왔다. EN까지는 그대로였고, F도 남아있었지만, J로 바뀌어 있었다.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성격은 변한다고 했다. 마흔 중반에 들어서며, 나도 성격이 변하는 사람이 됐다.

계획하고 보낸 하루와 그냥 보낸 하루는 밀도가 다르다. 해야 할 일이 쌓이면 하기 싫어지고, 회피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봤기에 지금은 피곤해도 그날 할 일은 그날 끝내는 편이다.

ENFP가 더 좋고 ENFJ가 더 낫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에겐, 지금 이 방식이 더 잘 맞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꽤 오래 걸렸지만, 지금의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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