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체육 역사는 길다.
그 사람의 체육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전라남도 광주시 계림동 변산부인과에서 2.8kg으로 세상에 온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광주 상무대 방위병. 그 전에 그 사람의 어머니는 전남 영광 산골에서 남편한테 선언했다. “내가 먹여 살릴랑게 도시로 갑시다.”
그 사람은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시내버스 종점 부근에서 아장아장 걸었다. 또 딸을 낳을 것 같아서 산부인과에 갔던 그 사람의 어머니에게 의사는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낮술을 했어요. 수술은 내일 하면 안 될까요?” 병원 문을 나서면서 마음이 바뀐 어머니 덕분에 그 사람의 동생 지현은 우렁차게 울며 태어났다.
그 사람은 네 살에 ‘친언니’를 만났다.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산골로 돌아와 보니, 그 사람과는 별로 안 닮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가 물고 빨고 키우는 여섯 살 먹은 언니 지숙이 있었다. 그 사람은 언니처럼 왼손으로 공기놀이를 하고, 언니의 어깨 너머로 한글과 덧셈 뺄셈과 시계 보기를 깨치고 마당을 나섰다.
울울창창한 대나무가 울타리를 대신하는 그 사람네 기와집. 대숲 끝에는 계곡처럼 푹 꺼져서 흐르는 냇가가 있었다. 내를 건너기 위해 놓은 다리는 홍수 질 때마다 떠내려갔다. 그 사람은 집 뒷산을 빙 돌아서 친구 해정이와 민오와 석금이를 만났다. 나무 끌텅으로 땅 파서 기지를 만들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봐야 하는 키 큰 나무에 오르고, 아랫집 광환이 삼촌 교과서에 나오는 고인돌보다 더 큰 바위에 착 붙어서 기어다녔다. 온 동네 아이들이 꾀벗고 물놀이를 해도, 취학 전에 한글을 읽고 쓰는 ‘촉망받는 인재’였던 그 사람은, 팬티를 꼭 갖춰 입었다.
그 사람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스카우트’ 됐다. 대도시에서 열리는 경연대회에 참가하고, 면민의 날에 거리 행진을 하는 밴드부. 무엇보다 체육이 먼저인 곳이었다.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을 익히려면 입대한 신병처럼 한강철교와 원산폭격을 했다. 눈이 종아리까지 쌓인 겨울에도 내복 차림으로 운동장에서 선착순 달리기를 했다. 의자 없이 의자에 앉은 자세로,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듣고 또 들었다.
88올림픽이 열리던 해, 그 사람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심리학적으로 답을 찾아가는 동아리 ‘자아성찰’ 덕분에 지리산 종주를 하고, 죽은 뒤의 세계를 떠올리며 글을 썼다. 그렇지만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동아리에는 원산폭격이나 한강철교가 기본 옵션이었다.
그 사람은 점점 일체의 체육 활동을 저어하면서 닥치는 대로 읽고 무언가를 썼다. 그런데도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필 대학에서 그 사람은 씨름왕(참가자 수 비밀)이 되고 말았다. 군산에서 광주 망월동까지 걷는 며칠 동안 발바닥에 물집 하나 잡히지 않았다. 출산한 지 한 달 만에 열린 시민단체 체육대회 농구 경기에서는 정확하게 3점 슛을 쏘았다.
“너는 전생에 독립운동가였어? 잠 안 재우는 고문을 받다가 동지들의 은신처를 불었어? 왜 안 자고 울기만 하는 건데?”
그 사람은 수면 장애가 있는 아기를 품에 안고 절규했다. 갓난쟁이 울음소리가 무서워 퇴근하고 집 앞에서 잽싸게 도망쳐 버렸다. 밤새 우는 아기한테 시달린 새벽, 그 사람은 집에서 튕겨져나와 후다닥 뛰었다. 운명적으로 ‘진정한 체육인’ 이희복 선생님과 가까워졌다. 마라톤 하프 코스를 완주하고 지리산을 종주하고 달빛 산행을 하고 전국 곳곳을 쏘다니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2009년 봄, 그 사람은 원광대학교 병원에 누워 있었다. 두 달 넘는 ‘블록버스터 대장정’ 끝에 둘째를 낳았다. 아기 키우고, 일하고, 바카라 읽고, 글을 쓰는 사이에 1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람의 얼굴은 자꾸 부었다. 몸무게도 만삭(56kg) 때보다 더 나갔다. 그 사람은 강연하러 가서 찍어야 하는 사진 때문에 운전석에서 훌쩍였다. 살기 위해 대체의학과 한의학과 현대의학을 전전했다. 그 사람보다 한 살 많은 막내 이모는 명쾌했다.
“늙느라고 그래야.”
누구한테나 공평하게 오는 늙음이 당도한 것뿐이라니. 노화한 그 사람은 오랜만에 동네 호수공원에서 달려보았다. 무지개를 좇는 어린이처럼 앞으로만 나아갔다. ‘내가 30분 동안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존재였다니.’ 매서운 바람 끝이 보드라워지고, 벚꽃잎이 흩날리고, 녹음이 짙어지고, 밤중에도 펄펄 끓어오르는 호수공원의 계절이 그 사람 곁으로 지나갔다.
그 사람은 지난해 가을부터 ‘팔머 메디스포츠’에 다닌다. 주 3회 그룹 피티. 돌아가며 서킷, 웨이트, 타바타를 한다. 체계적으로 배우는 스쿼트와 플랭크는 산골에서 나무를 타고 바위를 기어다니던 몸을 다시 깨웠다. 어린 시절의 놀이와도, 지긋지긋했던 밴드부 훈련과도 닿아 있었다.
그 사람의 체육사는 길다.
새로운 물길을 만들며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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