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출장일지

by배지영

지각 결석 완전 허용하는 ‘느슨한 일요 독서회’. 아무것도 안 했는데 금방 지나가 버리는 일요일 오전을 바카라 친구들과 알차게 보낸다. ‘밥정’은 들이지 않는다. 끝나면 부랴부랴 가방을 싼다. 식구들과 점심 먹고 카페 가는 게 일요일 오후 일정. 요새는 강성옥 씨 바빠서 강썬님이랑 둘이서 시간을 보낸다.


오늘의 메뉴는 남자의 3대 소울 푸드 중 하나로 꼽히는 돼지불고기 백반. 식당 앞 대기석. 나는 바카라을 읽었다. 강썬님은 옆에 서 있었다.


“앉아. 어제 힘들었잖아.”


강썬님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참 눈치가 없다. 시집살이와 슬롯생활을 안 해서 그렇다고, 나운2동의 현자 배지현 자매님이 늘 말했는데.


“앉아. 너 올려다보기 힘들어.”


눈부시게 하얀, 파자마 느낌이 나는데도 말도 안 되게 비싼, 실크가 섞인 것 같은, 어느 브랜드와 어디 브랜드가 콜라보를 한, 통 넓은 반바지를 입은 강썬님은 괜찮다고 했다.


“바지에 뭐 묻을까 봐?”


강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읽던 바카라을 의자에 깔아주었다. 다만, 소년의 반짝이는 신상 바지를 보호하기에는 바카라이 너무 작았다고나 할까.

“엄마, 나 이제 학업에 대한 흥미를 잃었어. 과외 그만 다녀도 되겠어.”


두 달 전, 중간고사를 마친 강썬님은 선언했다. 그 뒤로 학업 아닌 다른 무언가를 도모하는 중. 자기 ‘일’이니까 엄마 돈은 받지 않겠다는 단언까지. ‘일’하려면 필요하다고 아이패드도 모아놓은 용돈으로 샀다. 참고로 6월 초에 혼자서 부산 갔을 때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호텔비와 여행 경비를 엄마가 부담했음.


음식은 금방 나왔다. 양파에 덮인 불고기는 먹을 사람이 직접 잘라야 했다. 누가? 순식간에 판단을 내린 강썬님은 가위를 들었고 맙소사!!! 나는 보았다. 슬로우 모션 버튼을 누른 것처럼, 불고기 양념이 강썬님 쪽으로 튀는 게!!!



‘내가 잘못했어. 내가 큰 잘못을 했다고.’ 나는 절규했다. 우리 엄마 조금자 여사가 내 나이였을 적에, 지현은 서른, 나는 서른둘. 그때는 대개 신발을 벗고 식당에 들어갔다. 딸들보다 훨씬 건장하고 식욕이 좋던 엄마는 무엇을 먹으러 가든 밥 한술 뜨고 신발장 한 번 보며 안절부절. 진땀으로 멱을 감은 듯 축축해진 엄마는 어느 날 숟가락을 놓았다. 비싸고 멋진 당신 셋째 딸의 구두를 가만히 옆에 끼고 앉아서 환하게 웃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불고기 양념은 차마 강썬님의 바지까지 튈 용기가 없었던 듯. 너무 놀라버린 내 입맛만은 돌아오지 않았다. ㅋㅋㅋㅋ


눈부시게 하얀, 파자마 느낌이 나는데도 말도 안 되게 비싼, 실크가 섞인 것 같은, 어느 브랜드와 어디 브랜드가 콜라보를 한, 통 넓은 반바지를 입은 강썬님은 덥다고 했다. 나는 자동차 에어컨을 세게 켜고 카페로 향했다. 아아 한 모금 마신 강썬님은 ‘일’해야 하니까 스마트폰으로 패션을 탐구하고, 아인슈페너 크림부터 먹은 나도 ‘일’하는 척 바카라을 읽었다.


“강썬아. 소년의 출장일지 쓰면 어때?”

“그게 뭔데?”

“강제규도 119안전센터에서 밥할 때 재료랑 장 본 비용이랑 그날 만든 음식 기록했잖아.”

“나도 바카라 쓰라고?”

“아니이. 서울 가서 본 원단이랑 패턴이랑 구경한 브랜드랑 네가 산 옷만 써. 진짜 간단하게.”


출장 다녀온 지 만 하루. 강썬님은 ‘소년의 출장일지’를 쓰지 않는다. 처음이니까 어머니가 1회만 써볼까. 근데 뭐 써요?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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