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마냥 축하받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알리기 쉽지않은 그룹이 있다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고, 우리는 이 작은 생명체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여러가지 태명을 고민했지만, 아기가 안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안녕이’로 태명을 지었다. 건강하고 튼튼하여 몸과 마음 모두 안녕했으면 했다. 나에게 안녕! 하며 찾아온 것 같은 아기에게 인사를 하는 의미도 있었다. 이제 안녕이의 존재를 언제 알려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임신 후 안정기는 보통 12주가 되는 시점이다. 그 전에는 초기 유산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기뻐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었다. 남편은 우선 양가 부모님께 말을 하자고 했다. 아직 12주전이라 조심스럽다고 했는데, 그래도 시험관을 한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고 자주 근황을 물어보시니 말을 하자고 했다. 만약 어떤 일이 앞으로 생긴다고 해도, 부모님들은 우리를 믿고 격려해 주실 테니 괜찮다고 했다.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서 어떻게 알릴지 고민을 했다.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드로 이벤트를 한다고 하는 걸 보고 따라하기로 했다.
아기의 초음파 사진이 담긴 사진을 카드에 붙였다. 그리고 카드 안에는 이런 메시지를 썼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는 안녕이예요. 내년 6월에 만나요! 사랑해요”
부모님들과 식사를 하고 선물이 있다며, 편지를 건냈다. 카드를 읽으신 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반응이 같았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축하한다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남편과 나는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울지 않았는데 부모님들은 눈물을 흘리셨다. 그 모습에 나도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나를 위해 많이 기도하겠다고 얘기해주셨다. 이후 12주가 지나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도 임밍아웃을 하고 많은 축하를 받았다. 안녕이의 존재만으로 축하받는 행복한 시절.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는 임밍아웃은 이토록 축복이었다.
반대로, 쉽지 않은 임밍아웃도 있다. 바로 회사에서의 임밍아웃이었다. 사실 12주까지 임신소식을 회사에 알리면 2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 나이 30대 후반, 나는 12주전에 초기 유산을 겪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다. 임신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초기 유산도 빈번히 발생하는 일이라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회사에 알렸다가 혹시 초기 유산을 겪는다면, 너무나 속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몸 조심을 하며 단축 근무를 하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서 배려를 받는 게 훨씬 좋은 일이기는 하다! 그저 소심한 내가 이런 선택을 했을 뿐. 이제 정말 임신을 알려야 할 시기가 왔다. 임신을 알리려고 마음먹은 순간은 조직 개편의 영향이 컸다. 12주가 된 시점은 12월이었다. 회사에서는 내년 조직 개편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나는 임신 훨씬 이전부터 내년에 새로운 부서에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임신이 되었으니 내년에는 휴직을 해야 했다. 상사에게 이를 알려서 조직개편 시 반영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부장님께 면담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제 신변에 변화가 좀 생겨서…”
“퇴사하는 거예요? 이직?”
“아니요.. 저 임신했어요.”
본부장님은 놀랐지만 바로 축하한다고 했다. 그리고서 이런 말하는 게 미안하지만 현실적으로 언제 휴직을 하냐고 했다. 그래서 내년 5~6월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본부장님은 조직개편과는 상관이 없고 그대로 진행할 거라며 축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몸 조심하라고 하고 단축근무도 쓰라고 하셨다. 따스한 마음에 감사했다. 이후로도 팀원분들의 배려도 받고, 32주 이후에는 단축근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내 업무 대체자를 구하는 고민도 있었고 여러가지로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배려를 받으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일정을 정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임밍아웃을 하기 제일 힘든 대상은 회사이기는 했다. 아무래도 먹고사니즘에 관련된 문제고, 회사도 인력을 잃는 문제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임밍아웃은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말을 했는데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내 마음이 이렇게 달라졌다. 부모님께 말할 때는 눈물이 났고, 친구들에게 말할 때는 축하를 받았고, 회사에 말할 때는 한참을 고민했다. 누군가에게는 축하할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조직의 일정과 업무를 다시 짜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지나고 보니 내가 너무 많은 걱정을 했던 것 같다.
휴직을 앞두고 팀원들에게 아기 모양으로 만든 화과자를 건넸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아기 옷과 꽃다발을 선물받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안녕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걱정해주고, 잘 자라기를 바라주었다.임신을 하고 나서 처음 알게 된 것이 있다.
한 생명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그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
안녕이는 아직 내 배 속에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응원 속에서 아기는 이미 배려를 배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