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게는 새로운 룩이 생겼다 산부인과 룩이다
“저 이제 시험관 해보려고 하는데요. 검진 일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생리 이틀, 삼일차에 병원 방문하셔서 자궁 내막상태 한번 보실게요. 생리하시면 연락주세요.”
시험관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인공수정 후 몇 달이 지나서였다. 인공수정 실패 후 마음의 결심이 필요했다. 몇 달간은 친구들과 놀고 맥주도 마시며 그냥 쉬었다. 어느덧 여름이 되었고 다시 시험관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병원에 전화를 하자 역시 자궁에게 허락을 받고 일자를 잡으라는 말을 들었다. 자궁 선생님의 오더를 받아야 했으므로, 생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오랜만에 옷장에서 청색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나는 산부인과에 갈 때 가급적이면 청원피스를 입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원피스가 가장 편하다. 내가 입는 청색 원피스는 목부터, 다리 끝까지 전부 단추로 되어있다. 단추로 상반신 / 하반신을 나누어 여닫을 수 있다. 우선 산부인과 의자에 앉아 검진을 받을 때 치마로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된다. 우선 옷 갈아입기가 패스라서 편하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주사를 맞기도 편하다. 배에 주사를 맞는 경우가 있다. 바지를 입고 가면 치마로 갈아입어야 하고, 일반 원피스를 입으면 주사를 맞을 때 원피스를 허리까지 걷어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 원피스는 배 쪽의 단추 몇 개만 풀면 된다.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새로운 옷의 기준이 생겼다. ‘산부인과 가기 좋은 옷’ 이 옷은 예쁜 옷, 캐주얼한 옷의 범주를 넘어서, 진찰 받기 좋은 옷이다. 그래서 병원에 가기 전 이 옷을 꼭 빨아둔다.
청색 원피스를 입고 아침 7시 30분에 산부인과를 오픈런하는 여자가 바로 나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대충 씻고, 밥을 먹는다.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놀라를 우유에 말아 대충 욱여 넣고 밥을 먹고 약을 먹는다. 기존에는 건너뛰는 아침을 약을 먹기 위해 먹다 보니 몸이 좋아진 느낌이다. 커피와 술을 줄이니 역류성 식도염도 좋아졌다. 이것은 임신 준비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7시에 버스를 타면 7시 30분 좀 전에 산부인과에 도착한다. 벌써 대기실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두 세 커플이 보인다. 1등인 줄 알았는데 아쉽다. 여자분이 혼자 온 경우도 있지만, 남편 분과 함께 온 경우도 있다. 회사에서 산부인과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8시쯤 진료가 끝나면 늦지 않지만, 그 이상 진료가 길어지면 약간 늦을 수 있다. 다행히도 팀장님은 병원 진료로 아침에 살짝 늦는 것은 양해 해 주셨다. 그래도 조금 늦게 들어갔을 때 온라인 게임동료들과의 눈맞춤이 어색해 가급적 늦지 않고 싶다. 인사를 큰 소리로 하기에는 민망하고 살짝 목례를 한다. 저 사람들은 그저 나를 늦잠 잔 사람으로 보겠지, 하지만 시험관을 한다고 떠드는것 보다는 늦잠 잔 사람이 되는게 낫다. 그나마 병원이 집과 가까워서 다행이다. 다른 친구는 시험관을 준비하다가 연차를 쓰기가 힘들어 퇴사까지 했다. 역시 난임에서 힘든 것은 병원에 자주 가는 것이다.
시험관 과정에서 귀찮은 것 중 하나는 주사를 맞는 것이다. 자궁 내막을 튼튼하게 해주는 주사, 과배란 주사 등을 시간 맞춰서 맞는다. 친구들과 방탈출을 하다가 시간이 되어서 허겁지겁 화장실에 갔다.
“아 나 빨리 맞고 와야해!! 급해!!”
주사를 맞고 오면서 마약 주사바늘에 중독된 마약쟁이 흉내를 낸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어이없어 했다. 꽤나 아픈 주사지만 다행히도(?) 뱃살이 두둑해 주사를 맞을만 했다.
시험관은 난자 채취 후,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킨 후 자궁에 배아를 이식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난자를 채취하러 가는 날 남편이 시간이 되지 않아 엄마가 와주셨다. 아무래도 수면마취를 하다보니 보호자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기실에서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다 생활이 불규칙해서 시험관 하는 게 기본이더라.”
“엄마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하지마.”
생활이 불규칙해서 난임이 생긴다는 말에 살짝 짜증이 났고, 대기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듣고 상처가 될까 걱정이 되어 엄마를 나무랐다. 수면 마취를 하고 눈을 뜨니 채취가 끝나 있었다. 원장선생님은 나에게 30개나 난자가 채취되었다고 했다. 꽤 많은 숫자였다. 엄마와 나와서 소고기를 먹고, 빵까지 잔뜩 먹은 후 집에 와서 낮잠을 청했다. 이후 배아를 이식할 때까지 시간이 좀 있었다. 생리를 하면 다시 내막의 상태가 튼튼한지 보자고 하셨다.
생리 후 병원에 방문해 몸 상태를 봤다. “이번 차수에 자궁 내막이 튼튼하면 이식하시죠.” 이제 2주 뒤 이식을 할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내막을 본 후, 오후 반차를 쓴 낮. 이제 곧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병원 옆 솥밥집에 가서 혼자 솥밥을 시켜서 먹고 맥주 한 병을 마셨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무리가 갈 것 같아서 마시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식을 하고 임신을 한다면 술을 마시지 못하니 이 황금기에 딱 한잔만 마시고 싶었다. 솥밥집 직원들은 ‘낮술하네’ 싶으셨겠지. 한 잔 마시니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지금껏 들여온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 정말 그만 마셔야 한다. '애기를 낳고 마시자. 이제 정말 아가 만나야지!' 라는 생각으로 맥주 한 병을 즐겁게 마셨다. 그렇게 시험관 시술 전 마지막 맥주 한 병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