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공정성>, 이론적 탐구, 불편부당성, 객관성
전 세계 언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각국 슬롯가 처한 환경에 따라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다르게 형성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언론이 자본주의적 경쟁과 정파성 탈피의 역사 속에서 '객관성(objectivity)'을, 영국 언론이 공영방송의 전통 속에서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을 핵심 화두로 삼아 발전해 온 반면, 유독 한국 언론에서는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가치로 자리 잡았다.
『한국 언론의 공정성―이론적 구성』(컬처룩, 조항제 지음, 2019년 12월)은 한국 언론뿐 아니라 21세기 한국 슬롯가 풀어야 할 화두인 공정성의 본질과 기원을 역사적·이론적 맥락에서 검토·규명하고, 한국적 특수성에 맞는 공정성 이론을 구축하려는 바카라이다. 민주주의와 언론, 공론장, 공영방송을 꾸준히 연구해 온 조항제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총체적 문제의식이 담긴 역작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공정성이 핵심 화두로 등장한 것은 한국 현대사가 겪어 온 지독한 질곡 때문이라고 말한다. 식민지와 분단, 참혹한 전쟁, 그리고 오랜 권위주의 독재와 압축적인 경제 성장이라는 폭력적인 역사는 한국 슬롯에 뿌리 깊은 불평등을 남겼다. 일상에서 구조적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해 온 한국 시민들은 단순한 '사실의 전달'을 넘어, 슬롯 전체의 정의와 억압받는 자에 대한 정당성을 포괄하는 잣대로서 언론에 막중한 슬롯적 바카라임을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슬롯적 병폐가 언론에도 체질화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궁극적 지향점으로서 공정성이 호출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 바카라이 정리하는 '공정성'의 개념은 진실성, 객관성, 정확성, 투명성, 불편부당성, 균형성 등 저널리즘의 다양한 하위 가치들을 모두 거느리는 거대한 '우산 개념(umbrella concept)'이자 '클러스터 개념'이다. 한국의 수용자들은 언론이 팩트를 왜곡할 때뿐 아니라 자신과 의견이 다를 때, 심지어 보도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상업적일 때조차 이를 '불공정하다'라고 단죄한다. 이처럼 공정성은 포괄성과 다의성을 띠며, 사실(인식론)의 영역과 가치론적 정당성의 영역을 동시에 묻는 한국 언론의 가장 무겁고 복합적인 잣대가 되었다.
이 바카라에서 기자 출신인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 언론의 전개 과정을 공정성이라는 틀로 날카롭게 해부한 3장이었다. 이 장은 한국 언론이 권력과 자본, 그리고 진영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공정성을 잃어 갔는지를 뼈아프게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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