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휴식과 여백이 된 추석

나는 작가였고, 여전히 작가이고, 계속 작가이고 싶은 거 같다.


한밤중에 쓰고 잔 스토리 라인


15분 정도를 걸어서 출근하면, 거의 매일 직원용 후문으로 들어간다. 에어컨은 꺼져 있지만, 불은 켜져 있는 백화점 안의 에스컬레이터는 멈춰 서 있다. 걸어 내려가야 한다.


9시간을 백화점 안에서 앉을 새 없이 서비스직 노동을 하고 돌아오면, 은근 피곤하다. "쇼핑백 하실까요?", "OOO원 결제 들어 갑니다.", "포인트 하실까요?", "O*O님 맞으실까요?", "결제 카드 넣어 주시고요.", "주차나 영수증 하실까요?", "감사합니다."란 고정 멘트를 몇 시간 동안 큰 목소리로 반복하고 난 뒤라 목도 은근 컬컬하다.


마감 파트 출근 날은, 원래 정해진 퇴근 시간에 절대 퇴근한 적이 없다. 오픈한 지 이제 두 달 돼 가는 신상 직영점 매장이지만 매출 1위 매장이라 바쁘다. 정리할 것도 많다. 그래서 다른 매장 직원들은 가끔만 그런다던데, 내가 일하는 매장은 마감조가 항상 기본 20분에서 1시간이 오버 돼야 퇴근할 수 있다.


어떤 직영점 매장이든 똑같은 월급을 받는 정식 직원인데, 퇴근 시간은 항상 주변의 타 매장들 다 퇴근하고 까맣게 불 꺼진, 에어컨 꺼진 백화점 지하에 매일 유일하게 남겨진다. 본사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집에 와 아들을 챙기고, 설거지와 청소기와 미니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솔직히 두 눈이 간지럽다. 피곤함에 두 손으로 비비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한 시간이라도 노트북을 어김없이 켜 둔다.


다음 날 보면 이런 걸 다 쓰고 잤네 싶게, 뭔가를 또 타닥 타닥 타닥 대며 노트북 자판을 쳐 놨다. 짧게라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스토리 라인을 내 마음대로 끄적여 놓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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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나 북적이고 모였던 명절

이제는 조용해진, 그저 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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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다. 아들과 둘이 맞는 명절이자 추석은 아무 일도 없다. 아무 계획도 없다. 적막하기까지 하다.


외롭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다. 연애나 재혼에 대해 언급하는 지인들이 있다.

다행인 건지, 미안하게도 외롭지 않다. 주변에서는 설마이길 바랄지 모르지만, 당분간일 거라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닥 외로움 타는 성향이 아니다.

이혼해 단촐하게 아들과 둘이라 오히려 번잡함이 사라져 심적인 여유가 생겼다. 의무적으로 바쁘게 뭘 굳이 하지 않아도 돼 나의 시간들이 생겼다.


아들은 휴일이나 명절을 이제 집에 콕 박혀 쉬는 걸 좋아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북적이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 추석 연휴가 좋다. 노트북을 켜 놓고 하루 종일 대충 정리해 놓은 대본들을 수정하고 다듬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이 좋다.


내 일상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여러 목소리들의 이야기가 사라진 듯 보이지만, 내가 끄적이고 마음대로 써 내려가는 스토리는 점점 더 노트북 화면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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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전에도 거의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와 아들은 식탁에 마주 앉아 만두도 같이 만들어 보고, 송편도 같이 만들어 보곤 했었다. 지금은 사춘기에 접어 든 시기라 그러한 놀이도 이제 흥미로워 하지 않는다. 아들은 집에서 자신의 시간을 존중 받으며 조용한 휴일의 시간들을 즐겨가고 있다.

더구나 추석이나 명절 음식도 아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만 소량 준비해도 돼 크게 손이 가지 않는다.


이혼으로 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서운하지도 않다. 되려 못 박히도록 상처가 되는 말들을 듣지 않아도 되는, 생각지도 못한 얼굴 표정을 기분 상하도록 마주 대하지 않아도 되는 여백의 틈이 생겼다.

서로에게 생긴 벽, 길어지는 관계의 부재가 되려 나를 쉬게한다. 불필요한 마음과 감정의 부딪김이나, 미간을 찌푸릴 일이 없는 그 조용함에 온전한 휴식을 얻었다.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가족 애보다 그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돈, 돈 거리며 서로 생체기를 내는 그 모습을 보지 않아도 돼 편안하다.


나는 그렇게 얻은 내 시간과 여백 속에서 계속 글을 쓴다. 35년을 멈추지 않고 써 온 글쓰기에 온전히 기대고 있다.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 거다.




나는 작가다.

나는 계속 작가이고 싶다.



나는 이제 현실 속 일상의 원치 않는 이야기 속에 에너지를 소비하기 싫은 거다.

타인들이 보기에 적막해 보일지 모르는 그 고요한 시간들 속에 내가 써 가는 스토리 안에서 살고 싶은 거 같다. 나는 작가였고, 여전히 작가이고, 계속 작가이고 싶은 거 같다.


그런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본명이 아닌 작가 예명으로 유명해지고 성공하고 싶다. 그러나 누군가 날 알아봐 주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날 몰라 봐도 되니까 조용히 은둔하며 글만 쓰고 싶은 거다. 사는 데 전혀 불편함 없이 돈만 많지만 얼굴을 공개적으로 내밀지 않는 은둔의 작가이고 싶다.


작가 일로 번 돈으로 소문 내지 않고 소소히 기부도 하고, 좋은데 쓰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여유 있게 동네 산바카라을 하며 걸어다녀도, 맑은 하늘이 떠 있는 선선한 날 가볍게 등산을 해도, 누가 날 알아 보지 않는 게 더 편하다. 내 작가 예명만 유명하게 알려지고 돈은 꽤 버는, 계속 대본을 쓰고 스토리를 쓰는 작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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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나답게, 온전히 나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투닥투닥 작가 일 작업으로 벌어지는 사건들과 싸움을 즐기며 살고 싶다. 나답게,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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