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백화점, 이십대의 로망은!

20대의 허영이 불 켜진 백화점 안에 있었다. 드라마처럼!


일이 끝난 밤, 불 꺼진 백화점 안을 쳐다본다.

마감 근무로 매장 정리가 다 끝나고 퇴근을 위해 불꺼진 백화점을 걸어 나와야 한다. 기분이 묘했다. 살짝 낯설었다.




이십 대의 백화점


불 꺼진 백화점 안, 이십 대에 친구들과 둘러 앉아 허영심 가득한 대화를 하던 기억이 떠올렸다.


"우리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


"뭐, 결혼해서 애 낳고 애 엄마 돼 있겠지. 사모님이냐, 아줌마냐 그게 문제지."


"아니, 난 전문직 작가로 성공해서 유명해져 있을 거야. 그 돈으로 어려운 아이들이 꿈 키우는 걸 돕는 자선 사업 할 거야."


"돈 많이 버는 남자 만나서 사모님 소리 듣는게 제일 속 편한 거야."


"돈 많이 버는 남자 만나서 사모님 되든, 작가로 성공해서 유명해졌든, 우리 10년 뒤에 만나서 백화점 통째로 전세 내고 우리끼리만 밤새 쇼핑하자."


"그거 좋은데. 한 번 사는 인생 한 번 해 보자. 오늘 여기 다 문 닫아, 라고 큰 소리 치고."


우리는 그때 그 허영심 가득한 꿈을 백화점 안에 담아내며 활짝 웃었었다. 그때 우리는 백화점이란 파스텔 그릇 안에 이십 대 여자의 로망을 담고 있었다.










40대의 백화점


세 살 배기 아들은 백화점 한복판에서 드러누웠다. 십 오 분 정도를 백화점 복도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며 떼를 썼다. 쇼핑 온 사람들은 그 옆을 지나가며 힐끔힐끔 쳐다봤다. 피식, 피식 웃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순간, 얼얼 했다. 하지만 당황하거나 안절부절 허둥대지 않았다. 잠간이니까, 늦은 출산에 이미 아이 둘 셋을 키워 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가 있었다.


나는 두 팔로 보란듯이 팔짱을 끼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서서 가만히 지켜 봤다.


세 살 배기 아들은 십 오 분인가 이십 분을 백화점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러고 떼를 쓰며 드러 누워 있어도 엄마인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어났다. 일어 난 아들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엄마인 내게 와 안겼다.

나는 그런 아들을 꼭 안아줬다. 그리고 웃으며 등을 토닥여 줬다.


그렇게 세 살 배기 아들의 백화점 사건은 짧게 마무리 됐다. 그리고 다시는 백화점 안에서도, 어디에서도 그런 떼는 쓰지 않았다.





그런 백화점에서 나는 이제 서비스 직으로 일하고 있다. 살기 위해, 젊은 친구들과 섞여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열심히 일한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애쓰는 엄마이자 가장으로서, 다시 나다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하고 있다.


불이 밝혀진 환한 백화점 안으로 출근해 걸어 들어가 불 꺼진 백화점 안을 직원용 후문으로 걸어 나온다.


텅 빈 백화점 안은 정말이지 고요하다.


아침과 낮에, 이른 저녁에, 북적이며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비워져 있다.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돼 있다.

친절하고 정중한 인사로, 교육 받은 대로 환하게 웃으며 정문을 활짝 열어 주는 그 백화점이 아니다. 모든 문이 잠기고 닫혀 있어 직원용 후문으로만 나갈 수 있는, 멈춰 버린 공간이 돼 있었다.


불이 다 꺼진 텅 빈 백화점 안의 모습은 내게 조금 낯설다. 항상 환하게 불 켜진 백화점의 북적이는 모습만 봐 왔다. 백화점 안의 문화 센터를 즐기고, 쇼핑을 즐겼었다. 내 아들도 나와 친정 부모님 덕에 백화점이 친숙했다. 친정 덕에 백화점 VIP(VVIP까지 아니어도) 무료 서비스 음료도 즐겼었다.


백화점은 내게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친숙하고 편안한 서비스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40년 넘게 드나들던 백화점 안의 불 꺼진 고요한 모습은 다소 낯설었다.

친구들과 젊은 청춘의 허영심으로 로망을 담던 파스텔 그릇이 아니었다. 불 꺼진 백화점 안은 조용해져 버린, 멈춰 버린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불 꺼진 암막의 불확실성 속에 숨고 있는 내 모습 같았다.


하지만 백화점은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환하게 불을 켤 것이다. 다시 정문이 활짝 열리며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을 맞이할 거다.

불을 다 끄고 모든 문을 잠궈 버린 고요한 백화점의 모습을 잊은 채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걸음으로 북적이게 될 것이다.


나도 그 백화점처럼 다시금 아침을 맞이하게 될 거다.


불 꺼진 고요한 백화점 안을 직원용 후문으로 걸어 나오며 생각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다시 기지개 켜며, 더 크게 일으켜질 거란 로망을 다시 담아 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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