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로 10년을 있다가 이제 경제력을 키우고 살아 나가기 위해 장사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단은 부딪혀 보고 도전해 보는 성격이라 혼자서 여기저기 발품을 좀 팔았다.
급 매물로 나온 카페 사장님도 만나 보고, 한참 운영 중인 카페 사장님도 만나 보고, 전철역 안에 있는 사무실에 찾아가 사업부에 자판기 사업 프리젠테이션도 제출해 봤다.
동네나 시의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언뜻 보기엔 자기 사장님 소리도 듣고 뭔가 있어 보였는 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상가의 월세 개념이 현실적인 생각 속으로 치고 들어오면서는, 저 상가는 자기 소유일까 아니면 월세일까를 궁금해 하게 됐다. 월세면 저 자리는 한 달에 월마씩 내고 장사를 하는 걸까, 얼마를 벌어야 재료비에 아르바이트 인건비까지 감당하는 걸까도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가 또 장사 잘 되는 가게들을 보면, 돈 많이 버시겠다 싶어 부럽기도 하다. 몸 힘들게 아르바이트로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사장이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을 안 하게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경단녀가 된 아줌마들의 선택지는 별로 없다. 그 사람이 아직도 해 낼 능력과 열의가 있는지, 등을 보는 게 아닌 나라다. 나이, 학력, 스팩, 드을 보기 때문에 출산 전의 내 전공 분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은 게 대한민국의 여자들이다.
나이 마흔 넘어 누구 밑에서 몸 힘들게 일하느니 내 가게, 내 장사, 내 거 하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해 보기 전엔 진짜 모른다. 장사라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남들보다 늦게 자면서 잠도 많이 못 자는 게 장사라는 걸 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 같다. 나도 내 가게, 내 장사를 하고 있는 사장님들의 얘기를 듣고 알았다.
지금 와서야 웃으며 하는 얘기지만, 여자들은 20대때 작고 예쁜 카페 사장이 되는게 부러울 때가 있었다. 20대의 모든 여자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왠지 여자로서의 로망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애 셋 낳고 육아로 바쁜, 아는 동생은 결혼 전에 친 오빠네 카페에서 일하며 느꼈던 얘기를 해 줬다.
"언니, 절대 하지마요. 로망? 언니, 우리가 20대 때 철없는 마음에 여자가 예쁜 카페 사장으로 자기 장사하며 뭔가 여유 있게 사는 왠지 괜찮아 보였지. 지금 우리나라 카페가 너무 많아서, 한 건물 안에 있는 카페 만도 몇 개씩이고, 우리 오빠 지금 힘들어해요. 거기다 브랜트 커피숍에서 박리다매로 커피 값을 싸게 매겨서 장사를 하니까, 아냐, 언니, 절대 아냐. 절대 하지마요."
꽃, 나는 너를 본다
꽃, 너의 속이 아니라 너의
화사하게 예쁘게 낱낱의 얇은
꽃잎으로 피어난 너의
그 겉모습을 본다
꽃, 그래서 나는 너의 예쁨과
아름다움이 부럽다,
너의 뿌리와 너의 줄기,
흙속에 있는 너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꽃, 나는 너의 아름다운 피어남이
나의 모습이 아니어서
부러울 뿐이다.
(시 _ 제목 : 꽃을 담는 나 _저작권을 존중해 주세요.)
결국 우리의 시선은 꽃을 쳐다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 상화이 돼 보거나, 내가 그 직업이 돼 보지 않는 한, 내가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내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꽃이 돼 보지 않아서,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향기로운 향기를 퍼트리는 정말 얇은 겹겹의 꽃잎이 화사하고 예쁘게 피어나는 모습만 부럽다. 우리는 활짝 피어난, 색감이 선명하고 곱도록 아름답게 보이는 꽃만 본다. 그 꽃이 피기까지 우리 눈에 안 보이는 흙 속의 뿌리는 보지 못한다. 흙 속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는다. 보지 못하기에, 보이지 않기에, 우리가 그 뿌리가 돼 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꽃만 본다.
그 꽃의 뿌리가 그렇게 화사하게,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유혹으로 우리의 두 눈에 예쁘게 들게 하기 위해 얼마나 어두운 흙속에서 산고의 고통을 감내하는지 모르고. 여자들이 임신을 하면, 여덟 달에서 열 달을 무겁고 불편한 몸으로 내 씨앗 같은 아이를 위해 참아 내듯이. '나 죽는 건가?' 싶은 고통으로 3, 4kg 밖에 안되는 내 아이를 찢어지는 아픔으로 세상 밖으로 꺼내 놓듯이.
그래서 여자들이 하는 말들이 있지 않은가.
"둘째는 남자가 낳아 봐야 한다."
"남자들이 뭘 알아. 임신의 고충과 출산의 그 죽을 거 같은 고통을 알아? 모르니까, 몰라서 말만 쉽게 하는 거야. 육아가 어떤 건지 모른다니까."
"남자가 출산과 육아를 안해 봐서 우리나라 애 엄마들의 슬롯적 정바카라이 이 모양인거야. 모르는데 어떻게 정바카라을 제대로 해?"
"지 배 아파서 안 낳아 보고, 지가 잠 못 자 가면서 육아를 안 해봐서, 그냥 집에 들어와 잠간만 보니까, 애착 관계가 엄마랑 다를 수 밖에 없어."
"직접 낳아 보기 전엔 몰라."
"지가 품어 보지 않고 죽을 거 같은 고통을 몰라서, 왜 와이프들이 애 낳고 나면 자기 닮은 애인데도 자기는 미워하고 지 닮은 애는 안 미워하는지 몰라. 아무것도 몰라. 남편은 꼴보기 싫어도 애는 남편 닮았어도 안 밉다니까."
"여자들이 군대를 알아?", "여자들이 남자들의 외로움을 알아?"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그 어떤 것이든 다 돼 볼 수 없고,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보며 살 수는 없는 거 같다. 각자의 자리와 각자가 타고 태어난 역할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각자가 가진 장점과 특기가 달라서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남에 대해 함부로 예측하거나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사람에게 어떤 사정이 있기에,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기에, 어떤 생각으로 그 말과 행동을 하는지 그 속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상황과 사연을 십 분의 일도, 나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있는 자리와 시간에서 내가 버티고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과 상황만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없는 자리와 시간에서 타인들의 모습과 말과 행동은 볼 수 없다.
내가 없는 자리와 시간에서 타인들이, 지인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말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타인과 지인들도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각자가 함께 있게 되는 공간의 자리와 시간에서 두 눈에 보여지는 그 순간의 겉모습만 보게 된다. 힘께 있는 그 순간의 기억들만 알 뿐이다.
부모도 내 자식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내 자식이 학교에 있을 때, 학원에 있을 때, 어른이 돼서 온라인 게임에서 일할 때, 밖에서 나 모르게 연애를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어떤 말과 행동을 하며 어떤 모습인지 다 알 수 없다. 자식이 집에 와 부모에게 조잘조잘 다 얘기해 주지 않는 한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밖에서 겉만 보고 살 뿐이다.
그래서인가 보다.
카페 창가 앞에 혼자 앉아 커피 한 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천천히 마신다. 두 눈은 물끄러미 창 밖의 사람들만 하염없이 쳐다 본다. 길거리에 왔다갔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으면 '다들 잘만 살아가는 거 같고, 큰 걱정 없어 보이고, 힘든 일이 없어 보이는데 나만 힘든가?'란 생각이 든다.
주말에 어쩌다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 식당가에 가서 외식을 하다 보면, 테이블을 만석으로 채우고 있는 식당 안의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된다. 백화점에 진열된 절대 저렴하지 않은 베이커리, 커피, 과일, 요리 재료들을 척척 사는 모습들을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나만 돈 없고 나만 어려운가? 다들 웃으며, 여유롭게 잘들 사 먹고 사네.'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