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9에 다시 걷는 길

모든 걸 잃은 끝길에서 다시 걷는 길은 희망이길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뒷모습을 쳐다보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다. 앞을 보고 걸어가고, 거울에서 매일 확인하는 건 얼굴이다. 옷의 앞쪽 매무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내 뒷모습이 궁금할 때가 있다. 앞만 보고 걸어간다고 해서 뭐가 보이는 게 인생인 것도 아닌데, 자꾸 앞만 보게 된다. 아주 가끔, 때로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옆을 쳐다보기도 하지만 왜 그리 뒷모습을 쳐다보게 되질 않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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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캔 하나, 김 한 봉지 — 돈 없이 살아본 사람만 아는 것들


오늘 금융 리터러시 컨설팅 행사장에 일이 있어서 갔었다. 그리고 행사 관계자에게 조용히 부탁해, 재무 설계사분과 1:1로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장하면서 현실 경제나 재무 설계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까지 우왕좌왕하는, 대바카라 없는 '허당'으로 만들어놓을 줄은 더욱 몰랐다.



우리가 돈을 벌고 싶어하는 진짜 이유


사람들은 흔히 성공하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 돈을 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솔직해지면, 이유는 훨씬 단순하다.


빚을 지고 매달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는 그 버거움을 짊어지기 싫어서다. 핸드폰비, 카드값, 세금, 건강보험료 등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그 돈들을 못 낼까 봐 두려워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하루 못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를 사거나, 신축 아파트에 당첨돼 입주할 때 은행 빚 없이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핸드폰비나 카드값, 대출금이 연체돼 독촉 전화를 받아본 사람은 안다. 그게 사람을 얼마나 예민하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돈이 없으면 한 잔에 1,500원까지 저렴해졌다는 커피 한 잔도 사 먹기 힘들다. 반찬이라곤 참치캔 하나, 김 한 봉지뿐이어도 뭐라도 먹어야 움직일 힘이 생기는데, 그 김 한 봉지와 참치캔 하나조차 살 수 없는 날이 있다.


돈이 많다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최소한 굶지 않고, 먹고 싶은 걸 챙겨 먹으며 살 수 있다는 것. 매달 카드값과 핸드폰비, 세금을 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딱 그만큼이다.


마주 앉기까지


그래서 오늘, 늦지 않았다면 듣고 싶은 마음에 상담 자리를 만들었다. 작년에 처음 개설한 ISA 주식 계좌 이야기도 나누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혼으로 부당하게 떠안게 된 빚. 지난 2년간 혼자 힘으로 그 빚을 크게 줄여왔지만, 앞으로 경제력을 어떻게 다시 세우고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진 참이었다. 무료로나마 상담받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해서, 일단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2년, 가장 힘들고 배고픈 날들


2년 동안 어떻게든 아들을 바카라임지고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있는 일'을 골랐다기보다 내 이력서를 받아주는 곳, 나를 써주는 곳에서 일했다.


돈을 벌어야 아들을 굶기지 않을 수 있고, 매달 반드시 나가야 하는 지출들을 감당할 수 있었으니까.


그 2년 동안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배고픈 날들을 보내며, 길 한복판에 주저앉아 울어본 적도 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제발 더는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경제력과 경제 능력이라는 것의 현실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그 뼈아픈 깨달음을 안고 다시 한 걸음을 뗐다. 늦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경제 관념에 대해 배우기 위한 대화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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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시 걷게 되는 길이 있고, 다시 걷게 되는 순간이 있는 거 같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다시 서 있는 길 위에서


나이 49세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막다른 길 위의 끝에 서서 다시 걸어가야 하는 시점이다.


나이 49에 다시 걸어야 하는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알고 싶어도 미리 알아 지지 않는게 인간의 한계다. 그 끝을 모르고 또 걸어가야 할 뿐이다. 잠시 앉아서 쉬고, 뛰기도 해 보고, 빨리 걷다가 느리게 걸을 순 있어도 계속 살아갈 거라면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어차피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면 또 다시 내리막길로 곤두박칠 치며 넘어져 울기는 싫다. 더구나 나는 이제 20대가 아니다. 젊은 에너지와 하루 한 두 끼를 굶어도 팔팔한 청춘이 아니다. 그러니 더 두려울 수도 있다.


내가 그리는 바램과 겪는 현실이 다른


내가 걷는 길의 끝에 희망과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 게 확실하다면 두려워 할 일은 없다. 길 끝에 뭐가 있는지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기에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살려고 발버둥치고,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도 언제 나아지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한 게 일상이다. 거리를 걸으며 지나다니는 타인들을 보면 다들 별 문제 없이 잘만 살아가는 거 같은데, 어려움 없이 외식도 잘하고 7천원 짜리 유명 베이커리 빵 한 덩이도 잘만 사 가는 거 같은데, 왜 나만 그럴까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 번은 드는 게 현실이다.


태어나기를 재벌로 태어나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없어서다. 내가 신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과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버틴다.


평생이 공부다. 평생이 노력이다. 평생이 경험이다.


계속 길을 걸어갈 거라면 바라는 거다. 간절함을 꼭 붙잡고 열심히 아둥바둥 걸어가는 발걸음에 희망고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버티는 거다. 약속 되지 않은, 보장 되지 않는 길을 계속 걸어가며 버티는 거다.


그래서 나는 오늘 금융 리터러시 컨설팅에서 내가 뭐부터 정비하고, 뭘 각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고쳐나가고 정비해야 하는 지를 건지기 위해 대화를 나눴다. 조언을 구했다. 정보를 건지려 귀를 기울였다.



자존심 보다는 자존감


이른 나이는 아니다. 어찌 보면 100세 시대에 아주 늦은 나이도 아니다.


이 나이에 무너진 거 같은, 다 잃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 가운데서 자존심이 많이 상처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의 상담과 대화에서 살기 위해 자존심은 되려 불필요 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존심 보다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한 번 무너지고 초라한 결핍들을 빈곤하게 겪는 현실에서 나를 포기하지 않는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존심은 겉만 챙긴다. 하지만 자존감은 내면을 단단하고 강하게 할 수도 있다. 그 단단해지는 강함이 사람마다 다른 그 때를 나도 모르게 가져다 줄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자존심 보다 자존감을 지키며 다시 배우기로 했다. 다시 걸아가는 길 위에서의 내 발걸음을 지켜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