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2. 식신생재, 생일 용돈보다 잡채가 더 좋았다.

변동성과 속도에 대하여

byoh오마주

완벽히 식신생재,


우리 엄마를 이르는 말이다. 연월일 지지에 식신, 천간에 모두 편재인 엄마의 사주는 선명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는 뭔가를 계속 팔았다. 계몽사전집, 보험, 화장품, 그리고 정수기. 대학 시절, 시기적으로 정수기판매는 대히트에 가까웠다. 영업은 일종의 가족사업이기에 학과 사무실에 엄마 핸드폰이 진하게 박힌 볼펜을 왕창 꽂거나, 어디든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강력하게 어필했다. "우리 엄마 정수기 팔아요"라고. 한 번은 엄마 월급이 대기업 20년 차 아버지의 2배가 넘었다. 경북 2등으로 금 10돈도 받고, 보너스도 엄청 받았다. 그러나 식신생재, 그 말이 왜 나왔겠는가? 병원비, 인맥으로 쌓은 영업은 수당을 챙겨줘야 했다. 월급의 반은 나눠야 했다. 진급직전에 퇴사를 했는데, 관리직이 되면 월급이 적어진다는 이유였다. 이후로도 환갑이 넘는 나이까지 1년 이상 직업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65세가 넘은 올해나 들어서, 처음으로 실업수당을 받았다. 우리 엄마는 정말 움직이는 만큼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항상 의문이 들었다. 왜 저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가? 아버지가 적게 벌어주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 남매가 공부를 엄청 잘해서 비싼 과외나 원거리의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에 쓰려는 걸까? 단순하게 다다익선이라고 하는 말에 공감대신 의심을 품었다. 어릴 때부터 나름대로 관찰하며 인간관계의 데이터를 축척했던 것 같다. 노력과 손해, 애매한 관계 속에서 필요 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 그것이 모든 관계의 모형이었다.


그에 비하면 아버지는 쌓아서 재(財)를 만드는 사주다.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가 총무과 환경팀을 옮겼다. 지금에야 환경팀이 모든 회사에서도 역할이 높다고 하겠지만, 아버지 때는 아니었다. '좌천'을 의미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노동인권에 대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였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엄마에게 아버지는 '퇴사의지'를 끊임없이 말했다고 한다. 불같고 족대 같은 나와 달리 엄마는 인내심이 대단한 여자였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살살 달래서 정년퇴임하게 했다. 엄마의 인내심, 아버지의 버팀 덕분에 우리 남매는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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