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86
제주도의 무속신화 「차사본풀이」에 등장하는 강림은 본래 이승에서 살던 사람이었다. 그는 김치원 원님의 명을 받고 저승의 염라대왕을 찾아 나섰다. 죽은 세 아들의 억울한 사정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저승으로 가는 길을 알아낸 강림은 여러 어려움을 거쳐 염라대왕을 이승으로 데려왔고, 죽음에 얽힌 사건도 밝혀졌다. 그 뒤 강림은 저승의 일을 맡는 차사가 되었다. 인간으로 살던 강림이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강림이 처음 맡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날을 생각해 본다. 그는 죽은 사람을 저승까지 데려다주었고, 이제 다음 명령을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그가 조금 전에 다녀온 집에서는 아직 장례가 끝나지 않았다. 가족들은 죽은 사람의 옷과 물건을 정리하고, 멀리서 찾아오는 친척을 맞이하며, 앞으로 치러야 할 일을 의논하고 있을 것이다. 강림에게는 끝난 일이 그 집 사람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처음 데리러 간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신화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어느 마을에서 오랫동안 병을 앓던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노인이 죽은 뒤 가족들은 장례를 준비한다. 마당에는 조문객이 드나들고, 부엌에서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내놓을 음식을 마련한다. 집안의 어른들은 장례 절차를 의논하지만, 노인이 평소 맡아 하던 일을 누가 이어받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죽음과 함께 멈춘 일도 있고, 죽음과 상관없이 계속해야 하는 일도 있다.
노인이 살아 있을 때 집 뒤편의 작은 밭을 돌보았다고 생각해 보자. 밭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작물이 남아 있고, 물을 대거나 잡초를 뽑아야 할 때가 다가온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느라 밭에 나갈 겨를이 없다. 장례가 끝난 뒤에야 누군가 밭으로 가서 작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이 죽었다고 해서 작물이 자라기를 멈추거나 계절이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가 맡았던 일 가운데 누군가는 계속해야 하는 것들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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