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은 왜 흩어졌을까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63

by호시우행

창세기 11장은 사람들이 한 언어를 사용하던 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이동하다 시날 땅에 이르러 자리를 잡았다. 벽돌을 구워 돌을 대신하고 역청을 접착 재료로 사용하면서 도시와 탑을 세우려 했다. 그들은 탑을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쌓아 이름을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으려 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건축 기술을 나누었기에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큰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자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고, 탑을 쌓는 일은 중단되었다.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사람들이 탑을 세우려 한 이유는 스스로 밝힌 두 문장에 담겨 있다. 이름을 알리고, 흩어지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이름을 남기는 일은 자신들이 이룬 것을 오래 기억하게 하려는 바람과 연결된다. 흩어지지 않는 일은 함께 모은 힘과 삶의 터전을 유지하려는 바람과 연결된다. 탑과 도시는 두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성경은 그들이 왜 흩어짐을 두려워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다시 살아가는 일이 걱정되었는지, 함께 이룬 것을 잃고 싶지 않았는지, 자신들의 이름을 오래 남기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흩어지지 않기 위해 한곳에 모였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함께 만들려 했다.


바벨탑은 흔히 인간의 교만을 경고하는 이야기로 읽힌다. 사람들이 하늘에 닿으려 했고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셨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본문은 탑이 실제로 하늘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벽돌을 구워 건축물을 세운 기술 자체를 죄라고 규정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가진 기술보다 눈여겨볼 것은 그 기술을 통해 이루려던 계획이다. 그들은 이름을 남기고 흩어지지 않으려 했다. 탑은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 그 힘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미래를 확보하려는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한 민족이고 언어도 하나이므로 그들이 하려는 일을 계속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어 언어를 혼잡하게 하고 사람들을 흩으신다. 본문에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일을 나누며 공동의 계획을 실행하게 하는 조건이다. 하나님은 그 조건을 바꾸어 탑을 세우는 일을 중단시키신다. 이 장면을 인간의 교만에 대한 심판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인간이 큰일을 할 능력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계획까지 옳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질문도 남는다. 그렇다고 모든 공동의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힘을 모은 사람들의 계획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좌절되는 이야기다. 그 사건의 의미는 탑의 높이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모든 면에서 같은 생각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말을 듣고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같은 목표를 두고도 그 목표가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부담이 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바벨탑 본문은 사람들이 탑을 쌓는 동안 의견이 갈렸는지, 누군가가 계획에 반대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공동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고, 언어가 혼잡해진 뒤에는 그 일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같은 언어는 함께 일할 수 있게 했지만, 그들이 세운 계획이 끝까지 이어지도록 보장하지는 못했다.


자신들이 이룬 것을 오래 지키려는 마음은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며, 자신이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한다. 함께한 일을 기억하고 공동의 터전을 지키려는 바람이 없다면 오래 이어지는 관계와 제도를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키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무엇을 그대로 두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과거에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앞으로도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벨탑의 사람들이 실제로 변화를 거부했는지는 본문에서 알 수 없다. 다만 흩어지지 않으려던 계획이 무너지는 결말은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함께 머무는 것이 목적이 될 때,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계속 물을 수 있을까.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은다. 마을은 공동의 시설과 전통을 이어가고, 조직은 자신이 세운 원칙과 성과를 유지하려 한다. 이런 노력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탕이다. 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과 기존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일은 같지 않다. 처음에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든 규칙이 나중에는 다른 목소리를 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오래 유지된다는 사실만으로 그 방식이 여전히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함께 이룬 것을 지키려면 때로는 그것을 처음 만들었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바벨탑의 이야기를 오늘의 삶과 연결할 수 있다면, 그 질문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일을 이루었느냐보다 자신들이 이루려는 일을 다시 살펴볼 수 있었느냐에 있다.


성경은 탑이 중단된 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이 다시 만났는지, 다른 언어를 배웠는지, 새로운 도시를 세웠는지도 기록하지 않는다. 흩어짐이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고, 함께 머물려는 바람 자체가 잘못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흩어지는 일은 삶의 터전과 관계를 잃는 일이 될 수도 있으며, 한곳에 머무는 일은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갈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미리 정할 수는 없다. 본문은 사람들이 원했던 결과와 실제로 맞닥뜨린 결과가 달랐다는 사실을 남긴 채 끝난다.


완성되지 않은 탑 앞에서 처음의 두 목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고 싶었고, 흩어지지 않고 싶었다. 그 바람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고 큰일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들이 바라던 미래를 지켜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탑을 완성하지 못했고, 함께 머물려던 계획도 이루지 못했다. 성경은 그 뒤에 어떤 삶이 이어졌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결말이 알려주지 않는 삶을 남겨두면, 자신들이 이룬 것을 지키려는 마음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떤 공동체든 오래 이어지기를 바랄 수 있지만, 그 바람이 공동체 안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머물기 위해 무엇을 세우며, 그곳을 지키려는 마음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까지 대신 결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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