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할멈과 호랑이-팥죽 한 그릇은 어떻게 힘이 되는가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64

by호시우행

동짓날을 앞둔 할머니에게 호랑이가 찾아온다. 호랑이는 할머니를 잡아먹겠다고 위협하고, 할머니는 팥농사를 마치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할머니는 그날이 오면 자신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것을 안다. 시간이 흘러 동짓날이 가까워지자 할머니는 팥죽을 쑤면서 운다. 한 해 동안 가꾼 밭과 살아온 집을 두고 떠날 수도 없고, 눈앞의 호랑이를 물리칠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작은 존재들이 할머니를 찾아온다. 알밤과 송곳, 개똥, 맷돌, 자라, 멍석과 지게 등이 차례로 나타나 팥죽을 달라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도 살길이 막막한데 찾아온 이들에게 팥죽을 나누어 준다. 팥죽을 먹은 존재들은 할머니를 돕겠다고 나선다. 밤이 되자 호랑이가 찾아오고, 작은 존재들은 각자 가진 성질과 능력을 이용해 호랑이를 물리친다. 세부 장면과 결말은 전승본마다 다르지만, 할머니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위기를 작은 존재들이 힘을 모아 해결한다는 흐름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처음부터 작은 존재들이 호랑이를 물리치려고 모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팥죽을 얻으러 왔고, 할머니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할머니가 팥죽을 나누어 준 순간에는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그 뒤에 작은 존재들이 힘을 보탰다. 할머니의 나눔과 그들의 도움은 처음부터 계산된 거래가 아니었다. 팥죽 한 그릇이 호랑이를 이길 만한 무기는 아니었지만, 그 음식을 나누는 일이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에서 작은 존재들은 호랑이처럼 강해지지 않는다. 알밤은 알밤의 모습으로, 송곳은 송곳의 성질로, 맷돌은 맷돌의 무게와 쓰임으로 움직인다. 누구도 다른 존재와 똑같은 능력을 갖추지 않으며, 모두가 호랑이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각자의 힘이 한 위기를 향해 모이자 혼자서는 이길 수 없던 상대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모두가 같은 능력을 갖추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능력이 쓰일 수 있는 관계였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일에도 이런 관계가 필요하다. 농사를 지을 때 씨앗을 고르는 사람과 흙을 돌보는 사람, 물을 관리하는 사람과 수확한 것을 나누는 사람이 모두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에서도 앞에 나서서 일을 이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은 누군가의 몫이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역할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에게 힘든 일을 계속 맡기거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기여를 무시한다면 서로 다른 힘을 모으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서로 돕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교훈으로 끝낼 수는 없다. 할머니가 위기에 빠진 것은 나눔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호랑이가 자신의 힘으로 할머니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나눌 이웃만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을 해치려는 상대를 막을 방법이었다. 작은 존재들의 도움은 그 위협을 물리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도움은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위험에 놓였을 때 그 위험을 줄이고, 혼자 감당하던 부담을 함께 맡는 데까지 나아가야 힘이 된다.


팥죽을 나누는 장면에는 보답을 계산하지 않는 나눔의 모습도 담겨 있다. 할머니는 팥죽을 주면서 호랑이를 물리쳐 달라고 조건을 걸지 않았다. 작은 존재들도 처음부터 보답을 약속하고 팥죽을 받은 것은 아니다. 물론 현실에서 선의를 베푼다고 반드시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니다. 나눔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이 민담이 특별한 것은 나눔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할머니가 내어준 음식이 다른 존재들의 힘과 이어져 위기를 바꾸는 이야기로 펼쳐진다는 데 있다.


동짓날 팥죽은 우리 풍속에서 액운을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을 바라는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호랑이를 물리치는 것은 팥죽 자체의 신비한 힘만은 아니다. 팥죽을 받은 존재들이 자신에게 있는 능력을 사용해 함께 움직인다. 음식은 그들의 배를 채웠고, 나눔은 그들이 할머니의 사정에 응답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그릇의 음식이 여러 존재의 행동과 연결되면서 처음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다.


호랑이가 물러난 뒤 할머니와 작은 존재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이야기에서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그들이 계속 함께 지냈다고 상상할 필요도 없다. 민담은 할머니를 잡아먹으려던 호랑이가 물리쳐지는 데서 끝난다. 그 결말에 남은 것은 모든 존재가 한 가족이 되었다는 약속이 아니라, 혼자서는 막을 수 없던 위기를 여러 존재가 함께 막아냈다는 사실이다. 함께한다는 것은 늘 같은 곳에서 살거나 같은 생각을 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어려움에 응답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필요한 순간에 보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처음 팥죽을 쑤던 때를 떠올려 보자. 할머니는 자신이 곧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며 울고 있었다. 그때 찾아온 작은 존재들에게 팥죽을 나누어 주었지만, 그 한 그릇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미리 알지는 못했다. 팥죽은 여전히 팥죽이었고, 작은 존재들은 여전히 작았다. 달라진 것은 그들이 서로를 만났고, 각자의 힘을 한곳에 모았다는 사실이다.


내 앞의 팥죽 한 그릇을 나누는 일이 누군가의 위기를 함께 감당하는 힘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내어주고 어떤 몫을 함께 맡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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