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이 삶 62
줄루족에게 전해지는 한 설화는 인간이 왜 죽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두 전령의 이야기로 설명한다. 창조주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카멜레온을 보냈다. 카멜레온은 길을 가다가 열매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열매를 먹는 동안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죽음을 알리는 도마뱀이 출발했다. 도마뱀은 카멜레온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도착해 인간은 죽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뒤늦게 도착한 카멜레온이 영원한 생명의 소식을 알렸지만, 사람들은 이미 죽음의 소식을 들은 뒤였다. 생명의 소식이 먼저였는지 죽음의 소식이 먼저였는지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는 줄루족 전승 가운데 하나로 전해지며, 판본마다 세부 내용이 다르다. 전령으로 등장하는 동물의 종류가 달라지기도 하고, 카멜레온이 늦어진 까닭이나 창조주가 두 가지 소식을 보내는 과정도 같지 않다. 어떤 기록은 카멜레온이 열매를 먹느라 지체한 장면을 강조하고, 다른 판본은 창조주가 처음의 결정을 바꾸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룬다. 따라서 인간이 죽게 된 원인을 카멜레온의 실수 하나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는 죽음의 생물학적 원인을 설명하는 과학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이해하려고 만들어 전해 온 이야기다.
카멜레온은 왜 열매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을까. 설화는 그가 임무의 중요성을 몰랐는지, 시간이 충분하다고 여겼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열매를 먹는 행동도 그 자체로 특별한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에게는 전해야 할 소식이 있었고, 그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멜레온이 길에서 멈춘 사이 도마뱀은 출발했다. 평범한 행동 하나가 두 전령의 순서를 바꾸었고, 이야기는 그 순서에 인간의 운명을 걸어 놓았다.
우리는 흔히 결과를 알고 나서 그 결과를 만든 행동을 돌아본다. 일이 잘못되면 누가 늦었는지, 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지부터 묻는다. 카멜레온이 서두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의 지체만으로 인간의 죽음을 설명할 수는 없다. 창조주가 왜 서로 다른 소식을 보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판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모든 결과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서로 다르다. 바카라임을 묻기 위해서는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뿐 아니라, 그 행동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야기에서 놓치기 쉬운 것은 카멜레온이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도중에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맡은 일을 아예 포기한 것도 아니다. 늦었지만 자신이 받은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도 그의 말은 먼저 도착한 소식을 지우지 못했다. 카멜레온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순서가 결정되어 있었다. 임무를 끝내는 것과 임무가 가져올 결과를 바꾸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삶에도 늦게 도착하는 말이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 전에 관계가 끊어질 수 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 할 때는 상대를 다시 만날 수 없을 수도 있다. 오해를 풀 설명이 도착했지만 상대가 이미 다른 결정을 내렸을 때도 있다. 뒤늦은 말이 진심이라고 해서 잃어버린 기회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말이 쓸모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말은 자신의 바카라임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 될 수 있고, 감사의 말은 함께했던 관계를 뒤늦게라도 제대로 바라보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만 말이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과 그 말로 무엇을 회복할 수 있는지는 따로 살펴야 한다.
두 전령의 순서는 말의 내용뿐 아니라 말을 듣는 사람의 판단도 생각하게 한다. 어떤 소식을 먼저 들으면 그 소식이 기준이 되어 뒤에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들이기 쉽다. 처음 들은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은 뒤에는 그것과 맞지 않는 설명을 의심하거나 변명으로 여기기도 한다. 나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처음의 판단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그 결과까지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은 말의 진실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먼저 들은 말을 믿고 내린 결정은 실제로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설화 속에서 두 소식은 인간에게 서로 다른 미래를 열어 놓는다. 하나는 죽음 없이 살 수 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죽게 된다는 소식이다. 사람들은 죽음의 소식을 먼저 들었고, 카멜레온이 전한 말은 그 뒤에 도착했다. 이 순서가 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지 설화는 더 설명하지 않는다. 생명의 소식이 늦게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야기의 결말이다. 우리는 그 결말을 읽으며 인간이 죽는 까닭을 묻는 동시에, 이미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죽음을 안다는 것과 죽음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은 다르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내일이 이어질 것처럼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룬다. 죽음에 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매 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죽음을 늘 생각하는 것만이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 설화는 인간이 죽는 존재가 된 까닭을 이야기하지만, 죽음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정해 주지는 않는다. 그 질문은 전령들이 떠난 뒤에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는다.
카멜레온이 열매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설화의 흐름만 따라가면 그럴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전승에서는 창조주의 결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카멜레온이 서둘렀다면 인간이 영원히 살았을 것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전령의 도착 순서가 인간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열매를 먹는 작은 행동은 그 자체로 인간의 죽음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설화는 카멜레온이 도착한 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두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의 후일담을 새로 만들어 넣을 필요는 없다. 다만 카멜레온이 늦게 도착했다는 장면은 오래 남는다. 그는 소식을 전했지만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열매를 먹으며 보낸 시간은 지나갔고, 그 뒤에 도착한 말은 먼저 도착한 말의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러나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전해야 할 말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남아 있다면 바로잡고, 사과할 수 있다면 사과하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판단을 내릴 때는 먼저 들은 말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핑계로 남은 바카라임까지 외면할 필요는 없다.
카멜레온은 열매를 먹느라 늦었다. 설화는 그가 왜 멈추었는지 길게 설명하지 않지만, 그 짧은 지체를 두 전령의 도착 순서와 인간의 죽음에 연결한다. 열매를 먹는 행동과 인간이 죽는다는 운명 사이에는 현실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설화가 만든 연결이 있다. 그 연결을 사실로 믿지 않더라도, 이야기 속에서 작은 지체가 얼마나 큰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살펴볼 수 있다. 다만 그 결과를 한 동물의 실수로만 돌릴 수 없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카멜레온이 전한 생명의 소식은 왜 늦게 도착했을까. 그리고 이미 죽음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에게 그 말은 무엇으로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