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57
밤중에 마을에 내려온 호랑이가 어느 집 안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려 하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곶감을 주겠다고 말하자 아이가 울음을 멈춘다. 호랑이는 그 말을 듣고 곶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이기에 자기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것처럼 아이를 조용하게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산에서 짐승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호랑이가 이름만 들어본 곶감을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호랑이와 곶감」은 여러 형태로 전해진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는 도둑이 집에 들어왔다가 어둠 속에서 호랑이를 소로 착각하고 등에 올라탄다. 호랑이는 자기 등에 올라탄 존재가 곶감이라고 생각해 달아나고, 도둑은 자신이 탄 짐승이 무엇인지 모른 채 매달려 간다. 두려움을 느끼는 호랑이와 엉뚱한 짐승을 탔다고 생각하는 도둑은 서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이야기는 그 오해가 빚어낸 우스운 장면에서 끝난다.
호랑이는 곶감을 본 적이 없다. 곶감이 어떤 모양이고 어떤 맛인지도 모른다. 다만 어머니가 그 이름을 말하자 아이의 울음이 그쳤다는 사실을 들었을 뿐이다. 호랑이는 자신이 가진 정보로 곶감의 힘을 짐작했고, 그 짐작을 확인하지 않은 채 두려워했다. 모르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만나며 살아간다. 문제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부족한 정보를 자기의 상상으로 채우고 그 상상을 사실처럼 믿는 데 있다.
사람도 처음 만난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만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곤 한다. 누군가에 관한 소문을 들으면 직접 만나기도 전에 그 사람을 경계하고, 낯선 생활방식을 접하면 자신이 익숙한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기도 한다. 물론 첫인상이 언제나 틀린 것은 아니며, 경험에서 얻은 판단이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한 번의 경험으로 사람 전체를 안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확인된 사실처럼 받아들이면 판단은 쉽게 편견으로 굳어진다.
두려움은 본래 사람을 지키는 감정이다. 실제로 위험한 상황을 알아차리면 몸을 피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위험을 느끼는 사람에게 무조건 겁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위험한지 살피는 일이다. 실제 행동에서 확인되는 위험과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생겨난 불안은 같지 않다. 둘을 구별하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고,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 차이는 개인 사이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집단에 관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반복되면 그 집단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도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소문과 오래된 이미지가 실제 경험을 대신하고,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사실은 무시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려움은 사람들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고, 함께 살아갈 기회까지 줄인다. 누군가를 경계해야 하는지 판단하려면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두려움이 잘못된 상상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힘의 차이를 앞세워 해를 끼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을 확인하자는 말이 피해를 겪은 사람에게 더 많은 증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 사실을 살피는 일은 위험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고 그에 맞게 대응하기 위한 일이다. 두려움을 무조건 믿어서도 안 되지만, 두려움을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판단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호랑이는 곶감이 무엇인지 알아볼 기회를 얻지 못한다. 어머니의 말과 아이의 반응만으로 곶감의 힘을 상상하고, 도둑이 등에 올라탔을 때는 그 존재를 곶감이라고 여긴 채 달아난다. 호랑이에게는 자기의 짐작이 틀렸는지 확인할 여유가 없다. 이야기 속 웃음은 무서운 짐승이 엉뚱한 대상을 두려워했다는 데서 생기지만, 그 장면에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별하지 못할 때 판단이 얼마나 쉽게 빗나가는지도 담겨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만날 때마다 모든 사정을 확인할 수는 없다. 때로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위험이 닥쳤을 때는 충분히 알아볼 시간도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언제나 판단을 미루는 태도가 아니라, 판단의 근거를 살피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생각을 고칠 수 있는 태도다. 처음의 짐작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사람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생각과 실제 상황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더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다.
「호랑이와 곶감」에서 곶감은 호랑이보다 강한 존재가 아니다.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한 말 한마디가 호랑이의 상상 속에서 무서운 힘을 가진 존재로 바뀌었을 뿐이다. 호랑이와 도둑은 서로를 잘못 알아보았고, 그 오해 때문에 각자가 처한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두려움은 때로 실제 위험에서 시작되지만, 때로는 확인되지 않은 생각이 키우기도 한다.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는 호랑이의 어리석음을 웃는다. 하지만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이나 낯선 일을 만났을 때 어떤 이름을 붙이고 있는지 돌아보면 웃음만으로 끝내기 어렵다. 그 이름은 대상을 알아가는 출발점일 수도 있고, 더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구실일 수도 있다. 호랑이가 곶감을 알지 못한 채 두려워했듯, 우리도 어떤 대상을 충분히 알기 전에 이미 판단을 끝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