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 - 우리는 왜 사라진 도시를 되찾으려 하는가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55

by호시우행

아틀란티스는 바다 아래로 사라진 도시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 바다 너머에 번영한 나라가 있었고, 그곳에는 풍요로운 땅과 큰 건축물, 강한 군대와 막대한 재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라는 다른 지역을 지배하려 했고, 마침내 큰 재앙을 겪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도시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바다 아래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문명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에는 사라진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한때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세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처음 전해지는 곳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편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아주 오래전의 강대한 나라로 묘사한다. 그 나라는 큰 힘을 얻은 뒤 다른 지역을 정복하려 했고, 아테네의 선조들은 그 침략에 맞서 싸웠다고 한다. 이야기 속 아틀란티스는 막강한 나라였지만 끝내 재앙을 겪고 사라진다. 다만 이 기록만으로 아틀란티스가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나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 존재를 확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플라톤이 아틀란티스라는 이름과 그 나라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이 이 이야기를 들려준 까닭을 생각하려면 아틀란티스의 화려한 모습만 볼 수는 없다. 이야기 속 나라에는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 정교한 건축물과 강력한 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은 다른 나라를 지배하려는 데 쓰였고, 번영하던 나라는 끝내 몰락했다. 플라톤의 서술에는 강대한 나라가 절제력을 잃고 쇠퇴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틀란티스는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가를 자랑하는 나라라기보다, 커진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묻는 이야기 속 나라에 가깝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묘사한 아틀란티스의 모든 요소를 실제 고대 문명의 역사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작품 속 나라의 모습과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과거는 구분해야 한다.


아틀란티스가 사라진 장면은 짧지만 강렬하다. 도시와 나라가 재앙으로 무너지고 바다 아래에 잠겼다는 것이다. 그 뒤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들의 후손이 무엇을 기억했는지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누가 마지막까지 그곳에 남았는지, 도시가 무너지기 전 사람들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도 알 수 없다.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나라의 규모와 힘, 그리고 몰락이다. 그 나라를 이루었던 수많은 사람의 일상은 기록의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그런데 아틀란티스는 사라진 나라임에도 이름을 잃지 않았다. 플라톤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그곳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궁금해했고, 이야기 속 지형과 도시의 모습을 현실의 장소와 연결하려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중해의 섬이나 바다에 잠긴 고대 도시를 아틀란티스와 연결해 설명했다. 그러나 오래된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아틀란티스의 흔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적의 연대와 위치, 당시 사람들이 남긴 물건과 기록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다른 유적을 하나의 전설에 끼워 맞출 수는 없다.


바다 밑에는 실제로 오래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해수면이 달라지면서 물에 잠긴 땅도 있고, 지진과 다른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도시도 있다. 바닷속에서 발견되는 유적은 당시 사람들이 어디에서 살았고 어떤 물건을 사용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그런 흔적은 각각의 장소와 시대를 살펴야 이해할 수 있다.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을 먼저 정해놓고 유적을 해석하면, 발견된 사실보다 기대하는 이야기가 앞서게 된다. 과거를 알아내는 일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와 비슷한 장면을 찾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라진 도시를 찾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이 한때 존재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 흔적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진다. 돌로 만든 벽이나 무너진 기둥 하나라도 발견한다면 오래된 기록과 현실이 연결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틀란티스를 찾는 마음에는 실제 과거에 대한 호기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한 고대 문명을 상상하고, 어떤 사람은 현대 슬롯가 잃어버린 지혜가 그곳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틀란티스는 때로 과거를 알아보려는 대상이면서, 현재에 없는 무언가를 과거에 있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과거의 위대한 나라를 떠올리며 현재의 문제를 비교하곤 한다. 옛사람들은 자연과 더 가까웠고 공동체의 질서를 잘 지켰으며 오늘날보다 지혜로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래된 슬롯에도 갈등과 권력 다툼이 있었고,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일도 있었다. 과거의 생활을 오늘날보다 낫다고 말하려면 무엇이 나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건축물이 웅장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슬롯의 모든 사람이 풍요롭게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라가 강했다는 기록만으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평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아틀란티스 이야기는 그 나라의 크기와 힘을 전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은 거의 들려주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집을 짓고 밭을 가꾸는 사람들은 어떤 도구를 사용했을까. 누가 큰 건축물을 만들었고, 그 일을 위해 어떤 노동을 해야 했을까. 나라가 다른 지역을 정복하려 할 때 그 결정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플라톤의 글만으로는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이야기 속의 거대한 도시는 보이지만, 그 도시를 실제로 움직였을 사람들의 하루는 희미하다.


실제 고대 문명의 흔적을 연구하는 일은 그런 질문에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집터와 그릇, 곡식의 흔적과 뼈를 살피면 기록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생활도 짐작할 수 있다. 왕의 이름이 기록에 남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먹은 음식이나 사용한 도구는 땅속에 남을 수 있다. 작은 유물 하나가 전쟁과 왕조에 관한 기록에서는 볼 수 없던 생활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틀란티스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런 연구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다른 문명의 유적은 그 자체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는 자료다.


아틀란티스의 몰락을 오늘날의 문명과 비교할 때도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큰 나라가 반드시 무너진다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문명들은 전쟁과 자연재해,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변화 등 여러 이유로 흥하고 쇠퇴했다. 어떤 도시는 버려졌고, 어떤 도시는 다른 슬롯와 교류하며 모습을 바꾸었다. 한 문명의 마지막 장면만 보고 그 슬롯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는 강대한 나라가 힘을 잘못 사용하다 몰락하는 이야기지만, 그것을 모든 문명의 운명을 설명하는 역사 법칙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틀란티스가 오래도록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라진 도시를 통해 지금의 세계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건축물과 발달한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드러낸다. 그러나 건물이 크고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그 슬롯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곳을 유지하는 데 누구의 노동이 들어갔는지, 자원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권력은 누구에게 집중되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문명의 크기는 눈에 보이지만, 그 문명을 떠받친 사람들의 생활은 건축물만큼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내일 바다 밑에서 오래된 도시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그 유적이 아틀란티스와 관계가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아틀란티스가 아니더라도 연구할 가치는 충분하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집을 지었는지, 무엇을 먹고 어떤 물건을 만들었는지, 왜 그곳을 떠나거나 잃게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전설의 이름이 붙지 않아도 한 사람의 생활과 한 공동체의 역사는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틀란티스는 아직 지도 위에 확실한 위치를 표시할 수 없는 나라로 남아 있다. 플라톤의 기록을 넘어서는 증거가 없는 한, 그곳을 실제 역사에 존재했던 문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더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사이에는 기록을 읽고, 증거를 살피고, 아직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남겨두는 일이 있다.


바다 아래에 아틀란티스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의 흔적을 찾을 때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는 돌아볼 수 있다. 잃어버린 문명을 찾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지금보다 나은 세계가 과거 어딘가에 있었다는 믿음일 수도 있다. 두 마음은 함께 있을 수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바다 밑에서 돌 하나가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그 돌이 실제로 말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을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 돌 위에 먼저 새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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