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54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결혼한 여인이 어머니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 사실을 숨기면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테베에 닥친 재앙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하나씩 밝혀진 사실은 결국 모두 오이디푸스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찾던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오이디푸스가 알고 있던 자기 삶의 모습은 무너졌다.
오이디푸스는 애초에 예언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들은 뒤 그 일을 피하려고 코린토스를 떠났다. 그곳에서 자신을 길러준 왕과 왕비가 친부모라고 믿었기 때문에 멀리 떠나는 것이 그들을 해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예언을 피하려고 길을 떠났지만, 길에서 만난 사람과 다투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를 죽였다. 나중에야 그 사람이 자신의 친아버지 라이오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테베에 도착한 뒤에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사람들을 괴롭히던 재앙을 끝냈고, 그 공로로 왕이 되었다. 라이오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며 라이오스의 아내였던 이오카스테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도 태어났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라는 것도,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도 모른 채 왕으로 살아갔다.
시간이 흐른 뒤 테베에 다시 재앙이 닥쳤다. 오이디푸스는 이번에도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람들에게 묻고, 예언자를 부르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하나씩 확인했다. 처음에는 자신과 관계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증언이 모이고 오래된 기억이 이어지면서 자신이 피하려 했던 예언과 자신의 삶이 겹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진실을 찾으려던 사람이 마지막에 자기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때 오이디푸스에게 남은 것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죽은 라이오스는 돌아올 수 없었고, 이오카스테와 함께한 시간도 없던 일이 되지 않았다. 자녀들도 이미 태어나 있었다. 오이디푸스가 몰랐다는 사실은 지나간 일을 지워주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바로 그 두 사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데 있었다.
사람이 잘못을 판단할 때 결과만 볼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일부러 남을 해친 사람과 위험을 알지 못하고 실수한 사람의 행동을 똑같이 다루기는 어렵다.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다른 방법이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렇다고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벌어진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깨진 물건은 그대로 남고 다친 사람의 상처도 그대로 남는다. 몰랐다는 사실은 바카라임을 따질 때 중요한 사정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오이디푸스에게도 그 차이는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라이오스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도 몰랐다. 자신이 결혼한 여인이 어머니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더 이상 모른 채 살아갈 수 없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지식이 달라졌다. 같은 기억도 진실을 알고 난 뒤에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갖게 되었다.
이오카스테가 죽은 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렀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그는 자신이 보아온 세계를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없게 된다. 진실을 찾는 동안에는 눈앞의 사실을 확인하려 했지만, 진실을 모두 알게 된 뒤에는 그 눈을 스스로 없애버렸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작품 안에서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너무 늦게 진실을 본 자신에 대한 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도 오이디푸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큰 사건은 여기에서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인다. 왕은 자리에서 내려왔고, 왕비는 죽었으며, 오이디푸스는 눈을 잃었다. 테베를 뒤흔든 비밀도 밝혀졌다. 많은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소포클레스는 훗날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늙은 오이디푸스를 다시 등장시킨다. 이번에는 왕궁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눈먼 몸으로 딸 안티고네의 도움을 받으며 길을 떠도는 노인이 되어 있다.
콜로노스에 이른 오이디푸스가 처음부터 거대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묻고, 딸은 주변을 살핀다. 오이디푸스는 혼자서 길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안티고네의 도움을 받는다. 한때 테베의 왕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손길이 있어야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왕궁의 문을 드나들던 사람이 낯선 곳에서 머물 자리를 찾는 처지가 되었다. 오이디푸스의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왕좌가 사라진 것만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들이 달라진 데 있었다.
젊은 시절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고 왕이 되었으며 테베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늙은 오이디푸스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머물 곳을 찾는 데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을 생각하는 일과 별개로 눈먼 몸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앞에 놓인다. 큰 비극을 겪은 사람에게도 밥을 먹고 쉴 곳을 찾고 길을 걷는 시간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드러난다.
안티고네는 아버지 곁에 남아 그를 돕는다. 오이디푸스는 이제 자신의 삶을 혼자서 처리할 수 없는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왕이었던 사람이 딸에게 의지하는 일은 젊은 시절의 오이디푸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늙고 눈먼 몸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길을 계속 갈 수 없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여기에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벌을 받았는지를 묻는 것만으로는 그의 이후 삶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는 사람도 다음 날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남은 상처를 생각하는 일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뒤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일은 함께 필요하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을 선택하지 않았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부모의 결정도 그의 결정이 아니었다. 예언을 피하려고 떠난 길에서 누구를 만나게 될지도 미리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 행동의 결과가 모두 남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한 행동까지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는 없다. 사람의 삶에는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과 스스로 내린 선택이 늘 함께 들어 있다.
오이디푸스가 진실을 알기 전과 후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진실을 몰랐을 때에는 자신이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알게 된 뒤에는 그 자리를 계속 차지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행동을 다시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사실을 안 뒤에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는 남아 있었다. 과거를 바꾸는 선택은 할 수 없지만, 과거를 가진 채 살아가는 선택은 피할 수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도 비슷한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될 수 있다. 그때까지는 평범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말이 상대에게는 오래 남는 상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 수도 있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게 된 뒤에는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내기 어렵다. 그렇다고 지나간 장면을 다시 돌아가 고칠 수도 없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과거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인정하고, 가능한 부분을 고치고, 다시 같은 일을 하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일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용서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사과했다고 해서 상대가 입은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의 이후 삶과 피해를 입은 사람의 이후 삶은 서로 다른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오이디푸스에게는 이미 너무 늦은 일들이 많았다. 라이오스는 죽었고 이오카스테도 죽었다. 자녀들과의 관계도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눈을 잃은 뒤에는 왕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무엇을 해도 과거의 결과를 완전히 없앨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오이디푸스에게 시간이 남아 있었다. 테베를 떠난 뒤에도 길은 이어졌고, 콜로노스에서도 하루가 시작되었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늙은 오이디푸스가 보여주는 모습은 젊은 시절의 영웅적인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그는 더 이상 수수께끼를 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왕이 되지도 않는다. 자신이 어디에 머물 수 있는지 묻고, 딸의 도움을 받아 길을 걷는다. 거대한 사건을 지나온 사람의 남은 시간은 오히려 작은 일들로 채워진다. 어디에서 쉬고 누구를 믿을 것인지 정하고, 오늘의 몸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살피는 일이 남는다.
잘못을 알게 된 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의 사건이 너무 커서 그 뒤의 모든 시간을 그 사건 하나로 설명하고 싶어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의 사건으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잘못한 뒤에도 일을 해야 하고, 가족을 만나야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인정하는 순간부터 삶 전체가 하나의 잘못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시간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과거의 명예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다. 왕이었을 때 그를 둘러싸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왕의 자리도 사라졌다. 스핑크스를 물리친 영웅이라는 이름도 더 이상 그에게 필요한 이름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늙고 눈먼 몸과 그 곁을 걷는 딸이었다. 거대한 왕국을 다스리던 사람이 마지막 길에서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 길에서 오이디푸스가 과거를 없앨 수는 없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바꿀 수 없었다. 다만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진 채 다른 하루로 넘어갈 수는 있었다. 잘못을 알게 된 사람에게 남는 시간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과거가 있다고 해서 이후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간이 사과하는 시간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는 같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바꾸는 시간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피해를 입은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자기 삶을 바카라임지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왕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순간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 왕이 아닌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눈앞의 길을 스스로 볼 수 없고 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몸으로, 자신이 지나온 일을 안고 낯선 곳을 찾아가는 시간이 남았다. 과거의 잘못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도 함께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을 바꿀 수 없는 사람에게도, 아직 살아야 할 하루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