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 - 들키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왜 침묵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52

by호시우행

《임금님의 새 옷》은 한 아이의 말로 끝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임금이 벌거벗은 채 거리를 행진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한다. 재봉사들이 만들어냈다고 주장한 옷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사람들의 말이 한순간에 달라진다. 그동안 이어지던 침묵이 한 문장으로 깨지는 장면이다.


이야기에서 가장 통쾌한 순간은 바로 그때다. 임금도, 신하도, 백성도 알고 있던 사실을 한 아이가 입 밖으로 꺼낸다. 사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보고 있던 것을 말하기 시작한다. 임금이 무엇을 했는지, 신하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행렬이 어디까지 이어졌는지는 그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가 남는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된 순간과 진실을 말하는 순간은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봉사들이 옷을 만들고 있다고 할 때부터 사람들은 그 옷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고 임금 역시 거울 앞에서 옷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먼저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믿어서였다고만 하기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 옷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자기 직분에 맞지 않는 사람이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옷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기 어려워진다. 사실을 말하는 순간 자신이 어리석거나 자격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봉사들이 만든 것은 옷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을 막는 조건도 함께 만들어졌다. 옷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면 자신에게 불리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확인할 수 없으니, 각자는 자신만 이상하게 보일까 봐 침묵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특별히 많지 않아도 거짓말이 오래 갈 수 있다. 열 명이 모인 자리에서 아홉 명이 침묵하고 한 명이 자신 있게 옷이 보인다고 말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말에 맞추기 쉽다. 실제로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임금의 행렬을 따라가던 사람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앞사람이 옷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 옆 사람이 재봉사의 솜씨를 칭찬하면 뒤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 있다. 자신만 다른 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때 생길 일을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회의에서 모두가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카라임 있는 사람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족 안에서도 한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괜히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아 말을 삼키는 일이 있다.


침묵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정말 몰라서 침묵할 수도 있고, 무엇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해서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말이 틀릴까 두려워서 입을 다물기도 하고, 말한 뒤에 감당해야 할 일을 생각해서 침묵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같은 침묵처럼 보여도 그 안에 있는 이유는 다르다.


《임금님의 새 옷》에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서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지나치게 의식한다.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려면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도 감수해야 한다.


아이의 말이 특별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아이는 그 자리에 있는 어른들이 두려워하던 것을 아직 같은 방식으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직분을 지켜야 할 필요도 없고, 임금에게 잘 보일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말했다.


하지만 아이가 말한 뒤에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이 공개되었다고 해서 그동안의 침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임금은 여전히 행렬을 계속하고 있고, 신하들은 여전히 그 곁에 있다. 사람들은 이제 서로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에게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방금까지 옷이 있다고 말했던 사람이 갑자기 없다고 말하려면 자신의 앞선 말을 설명해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 역시 왜 침묵했는지 설명해야 할 수 있다.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거짓말 자체보다 그 거짓말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행동이 남는다.


이야기는 그 바카라임을 묻지 않는다. 임금이 행진을 멈추었는지, 재봉사들이 벌을 받았는지, 신하들이 사과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백성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는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에 멈춘다.


그래서 오히려 그다음 장면을 생각하게 된다. 같은 사람들이 다시 궁전에 모였을 때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까. 조금 전까지 옷이 보인다고 말했던 신하가 이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일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임금 역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사람들을 다시 불러야 할 수 있다.


진실이 밝혀진 뒤에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누가 먼저 사실을 말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도 침묵했으면서 다른 사람의 침묵만 비난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해서 그때의 행동이 모두 같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권력이 있는 자리에서는 침묵의 의미가 더 무거워진다. 임금의 곁에 있는 신하는 임금의 기분을 살피는 사람일 뿐 아니라, 잘못된 판단이 생겼을 때 그것을 말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실을 숨긴다면 권력자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기회를 잃는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언제나 용감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권력이 강한 곳에서 사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실제 손해가 돌아갈 수도 있다. 가족이나 온라인 게임에서도 말 한마디가 관계를 깨뜨리거나 일을 잃게 만들 수 있다. 침묵을 쉽게 비겁함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침묵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침묵의 결과가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이 계속될 수 있다. 한 사람이 잘못을 알고도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앞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침묵하면 거짓은 혼자 힘을 쓰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는다.


이때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큰 용기를 내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정말 그런가요?”라고 묻는 것도 이미 다른 행동이다. 사실을 단정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본 것을 숨기지 않는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 말할 공간을 만든다.


《임금님의 새 옷》에는 그런 중간 단계가 없다. 모두가 옷이 있다고 말하는 동안 갑자기 아이가 사실을 말한다. 동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명한 장면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그 사이에 수많은 작은 침묵과 망설임이 놓인다.


어떤 사람은 회의가 끝난 뒤 동료에게만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집에 돌아와서야 그 말을 꺼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다음 날에도 아무 말 하지 않을 수 있다.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아이의 한마디보다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분위기가 더 오래 남는다. 임금 한 사람의 허영만으로는 행렬이 그렇게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재봉사들의 거짓말이 있었고, 그것을 의심하면서도 침묵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서로의 반응을 살피면서 같은 말을 반복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바카라임을 모두 똑같이 나눌 수도 없다. 옷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인 재봉사와, 임금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한 사람과, 겁이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의 처지는 다르다. 같은 침묵 속에서도 권한과 바카라임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진실이 밝혀진 뒤에 남는 일은 그래서 단순하지 않다.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 누가 침묵했는지가 뒤늦게 드러난다. 한 번의 행진이 끝난 뒤 사람들 사이에는 그날의 행동에 대한 기억이 남는다.


어쩌면 임금에게 가장 어려운 일도 그다음일 것이다. 옷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신이 없는 옷을 입고 거리를 걸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에는 그 장면이 없다. 임금이 무엇을 배웠는지, 신하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동화는 아이의 한마디에서 멈춘다. 그 뒤의 궁전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일을 했을 것이고, 신하들은 다시 임금 앞에 섰을 것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골라야 했을 것이다. 전날까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던 말이 그날 이후에는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아이가 한 번 말한 뒤에는 모두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다음번에도 누군가가 먼저 말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번의 폭로가 다음 침묵을 막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새 옷》에서 끝난 것은 행진이지만, 끝나지 않은 것은 사람들 사이의 말이다. 누군가는 다음 회의에서도 입을 열기 전에 주위를 살필 것이고, 누군가는 어제의 일을 기억하며 자신의 말을 고를 것이다. 진실을 한 번 말하는 일과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다.


동화에는 아이의 마지막 말 이후가 없다. 궁전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대화도, 임금이 내린 결정도, 신하들의 태도도 기록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보고 있던 것을 한 사람이 먼저 말한 순간과, 그 말을 들은 뒤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침묵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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