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와 직녀-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약속은 살아 있을까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51

by호시우행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두 사람이 만나는 날을 중심으로 전해진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를 만나는 날이다. 전승에 따라 세부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는 두 사람이 일 년에 한 번 만난다고 한다. 만나는 시간은 짧고 떨어져 있는 시간은 훨씬 길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다. 직녀는 베를 짜고 견우는 소를 돌보는 일을 맡고 있었다. 둘이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겨 맡은 일을 소홀히 하자 하늘의 존재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은하수가 둘 사이에 놓이고, 정해진 날에만 오작교가 놓인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만남보다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장면은 오작교 위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이지만, 두 사람의 대부분의 시간은 그 다리 없이 흘러간다.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한 하루가 두 사람의 삶에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속한다.


그 사이의 생활은 설화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소식을 전했는지, 매일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다음 만남을 어떻게 기다렸는지도 알 수 없다.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덧붙일 근거도 없다. 이야기에는 두 사람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과 다시 만날 날이 있다는 사실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바로 그 빈 시간에 약속에 관한 질문이 생긴다. 함께 있을 때 한 말은 상대의 얼굴을 보며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그 말을 지키는 모습을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다. 사람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자신이 한 말을 따라 살아갈 수 있을까.


약속은 거리를 없애주지 않는다. 만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은하수를 건널 수도 없고, 정해진 날을 앞당길 수도 없다. 바뀌지 않는 조건 속에서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상대와 나눈 말을 잊지 않는 일이 남는다.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을 생각하면 이 문제가 조금 가까워진다. 부모와 자녀가 다른 지역에서 살면 예전처럼 자주 얼굴을 볼 수 없다. 온라인 게임 때문에 부부가 한동안 다른 곳에서 지내기도 하고,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가 몇 년 만에 다시 마주 앉기도 한다. 함께 있지 않은 시간이 길어지면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도 달라진다.


어떤 가족은 정해진 날에 전화를 하고, 어떤 가족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연락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라도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면 먼저 찾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매일 얼굴을 보면서도 상대의 사정을 묻지 않는 사이가 있다. 곁에 있는 시간과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견우와 직녀에게는 각자의 일을 계속해야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견우는 소를 돌보고 직녀는 베를 짜는 일을 맡았다.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동안 그 일이 멈추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만날 수 없는 시간이 길었다면 두 사람에게도 그 시간만큼의 생활이 있었을 것이다.


기다린다고 해서 하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침이 오면 해야 할 일이 있고, 몸을 돌봐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야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다음 만남까지 모든 시간을 비워둘 수는 없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오늘의 일이 먼저 찾아온다.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도 달라진다.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기도 하고, 한때 중요했던 일이 나중에는 별것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오래 떨어져 지낸 사람은 상대에게 일어난 변화를 모두 알 수 없다. 다시 만나는 날에는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사람과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녀가 오랜만에 만날 때도 그렇다. 부모의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의 자녀가 남아 있지만, 몇 년 뒤 눈앞에 선 자녀에게는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있다. 부모가 기억하는 모습만으로 지금의 자녀를 판단하면 그 사이에 있었던 시간을 놓치게 된다. 자녀도 예전의 부모만을 기대한다면 달라진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일도 다르지 않다. 함께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기억이 선명해도 그 기억만으로 지금의 친구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떨어져 있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는지는 다시 만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오래전에 한 약속도 시간 밖에 놓여 있지 않다. 약속을 한 사람은 그날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처지가 달라질 수도 있고,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며,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같은 말을 다시 꺼내도 그 말을 듣는 사람의 형편은 예전과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약속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래된 말을 지금의 형편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살펴야 한다. 처음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과 그 말이 지금도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약속을 지키는 데에는 기억하는 일과 함께 현재를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견우와 직녀의 설화는 그 판단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는 날에 무엇을 말했는지도, 다음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전해지지 않는다. 해마다 다시 만난다는 사실만 남아 있다. 이야기 밖에 놓인 시간을 우리가 마음대로 채울 필요는 없다.


다만 두 사람의 삶에 만나는 하루만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오작교가 놓이지 않는 날들이 훨씬 많았다. 두 사람이 그동안 서로를 얼마나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의 시간은 계속 흘렀다.


현실에서도 관계는 만나지 않는 날에 드러날 때가 있다. 멀리 있는 자녀에게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먼저 연락하거나,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 안부를 묻는 행동처럼 작은 일이 남는다. 함께 있는 순간에는 쉽게 지나치는 태도가 떨어져 있을 때 더 분명해지기도 한다.


모든 약속이 끝까지 같은 모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처음 약속했을 때와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지킬 수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처음 했던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약속했는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견우와 직녀에게는 그런 선택의 장면이 없다. 그들은 해마다 다시 만났고 다시 헤어졌다. 설화가 자세히 남긴 것은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동안의 생활이 아니라, 두 사람을 갈라놓은 은하수와 다시 만나게 하는 오작교다.

오작교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지만, 함께 살게 해주지는 않는다. 다리를 건너는 하루가 지나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만남은 거리를 잠시 건너게 할 뿐, 그 사이에 흘러간 시간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다음 만남은 지난 만남의 바로 다음 장면이 아니다. 그 사이에 한 해가 지나고, 두 사람의 생활도 이어지고, 몸과 생각도 달라진다. 다시 마주하는 두 사람에게는 서로에게 말해주지 못한 시간이 생긴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 위에서 무엇을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날이 지나면 다시 긴 시간이 시작된다. 다음 해의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견우에게는 소를 돌보는 일이 있고 직녀에게는 베를 짜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설화는 그 하루하루를 기록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해마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다음 해를 향한 시간이 남는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작교가 놓이는 날뿐이고, 그날과 다음 날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날은 이야기 밖에 있다.


견우와 직녀는 다시 만난다. 그리고 다시 헤어진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은하수 건너편에서 각자의 일이 다시 시작되고, 다음 오작교가 놓일 날까지 또 한 해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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