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울프-영웅이 죽은 뒤에도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나는 인간의 삶 48

by호시우행

덴마크의 왕 흐로트가르를 괴롭히던 그렌델을 물리쳤고, 그렌델의 어머니와도 싸웠다. 세월이 지나 베오울프는 고향 땅의 왕이 되었다. 젊은 전사가 늙은 왕이 된 뒤에도 그의 삶에는 싸움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상대는 용이었다. 용은 오랫동안 보물을 지키고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인 잔이 도난당하자 분노하여 사람들의 땅을 불태웠다. 베오울프는 이제 늙었지만 용을 직접 상대하기로 했다. 젊을 때처럼 혼자서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왕으로서 그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베오울프를 따라간 전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용이 나타나자 그들은 물러났다. 위글라프만이 남아 베오울프와 함께 싸웠다. 두 사람은 마침내 용을 죽였지만 베오울프 역시 용의 독이 묻은 상처를 입었다. 전투가 끝난 뒤 베오울프는 위글라프에게 보물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평생 지켜온 왕국과 자신이 얻은 명예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그 보물을 바라보았다. 목걸이를 위글라프에게 주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뒤 베오울프의 생은 끝난다.


용도 죽었다. 베오울프도 죽었다. 오래 이어진 싸움은 그렇게 한 장면 안에서 함께 끝났다. 그런데 두 죽음의 의미는 같지 않다. 용이 죽은 뒤에는 더 이상 보물을 지킬 존재가 남지 않았지만, 베오울프가 죽은 뒤에는 왕의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남았다. 용의 죽음은 한 생명의 끝이지만 왕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베오울프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이름은 왕국의 힘과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베오울프를 두려워했을 수도 있고, 그의 명성이 나라를 지키는 데 힘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명성이 나라 전체의 안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마지막 싸움에서 그 한계가 드러난다. 베오울프는 용과 맞섰지만 함께 온 전사들은 물러났다. 위글라프가 남았기 때문에 싸움을 끝낼 수 있었지만, 왕이 죽은 뒤에는 그를 대신해 싸울 사람이 필요하다. 위글라프는 물러난 전사들을 꾸짖는다. 그들은 베오울프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가장 위험한 순간에 그 자리를 떠났다. 베오울프의 죽음은 그들의 용기와 충성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묻게 만든다. 맹세는 말로 할 때보다 위험이 닥쳤을 때 더 무거워진다. 평온한 날에는 충성을 약속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자신에게 손해가 생길 수 있는 순간에도 약속을 지킬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위글라프의 행동이 특별하게 기억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베오울프와 함께 싸웠고, 죽어가는 왕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베오울프가 사라지는 순간 그의 곁에 남은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위글라프가 베오울프를 대신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곧바로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왕의 용기와 경험, 명성은 그 사람의 몸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베오울프의 죽음은 왕의 교체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남긴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맡아온 역할을 다른 사람이 이어받으려면 그 사람에게 없던 경험과 관계까지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왕의 자리를 물려받는다고 해서 왕의 영향력까지 그대로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오랫동안 한 사람이 회사를 이끌었다면 그 사람이 떠난 뒤 업무표만 넘겨받는다고 조직이 이전과 같아지지 않는다. 거래처와의 관계, 직원들이 서로 일하는 방식, 문제가 생겼을 때 판단하는 기준까지 함께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중요한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 맡았다면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뒤에야 다른 가족들이 무엇을 몰랐는지 드러날 수 있다. 돈을 관리하는 일과 병원에 가는 일처럼 눈에 띄는 일도 있지만, 가족의 갈등을 중간에서 조정하는 것처럼 기록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베오울프의 왕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왕의 명령으로 움직이던 사람들이 왕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는 이전과 다른 문제다. 전투에서 용을 죽이는 일보다 더 느리고 복잡한 일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베오울프가 죽기 전에 용이 지키던 보물을 보았다는 장면이다. 오랫동안 쌓여 있던 금과 장신구는 용에게도 베오울프에게도 생명을 대신해주지 못했다. 용은 보물을 지켰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못했다. 베오울프는 마지막 순간 그 보물을 바라보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계속할 수도 없었다. 보물은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주인이 사라진 뒤에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람이 재산을 모으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과 가족의 삶에 쓰기 위해서다. 그런데 재산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주인의 손에만 머물면 삶을 돕는 수단이 아니라 지켜야 할 대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용이 보물을 지키는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베오울프는 보물을 보며 자신이 왕으로 살아온 시간을 생각한다. 그가 그것을 보고 무엇을 정확히 느꼈는지는 원전이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자신의 왕국을 위해 싸웠고, 죽기 직전에 자신이 얻은 보물을 확인했다.


그 보물의 운명은 베오울프의 운명과 달랐다. 베오울프에게는 끝이 있었지만 보물에는 다음 주인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재산과 땅과 건물은 남아 다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재산을 남긴다는 말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따라온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수 있다. 죽은 뒤에는 그 결정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이 문제는 왕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집을 물려줄 때도 그렇고, 농부가 농지를 남길 때도 그렇다. 물려받은 사람은 그것을 그대로 보존할 수도 있고 팔 수도 있으며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남긴 사람의 뜻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지는 간단하게 결정되지 않는다. 재산을 남기는 일과 그 재산의 사용까지 통제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베오울프가 마지막에 보물을 바라보는 장면에는 그런 인간의 한계도 함께 놓여 있다.


베오울프의 죽음 뒤에 더 불안한 문제가 남는 이유는 왕국의 위치 때문이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주변 세력이 베오울프의 죽음을 알게 되면 고향 땅을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나타난다. 강한 왕이 죽었다는 소식 자체가 다른 나라의 판단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베오울프의 죽음은 장례를 치르면 끝나는 개인의 사건이 아니다. 왕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국경 밖으로 퍼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그 소식을 이용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면서 새로운 위험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영웅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살아 있을 때의 베오울프는 용을 상대하는 사람이었다. 죽은 뒤의 베오울프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이 차이는 지도자의 죽음에서 자주 나타난다. 살아 있는 지도자는 직접 명령하고 판단할 수 있지만 죽은 지도자는 자신의 이름과 남겨진 제도,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만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살아 있는 사람이 결정한다.


베오울프는 자신의 뒤를 모두 준비해놓고 떠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마지막 전투에 직접 나섰고, 죽기 직전 위글라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삶에는 영웅으로서의 바카라임이 분명했지만, 죽은 뒤의 왕국까지 완전히 설계할 시간은 없었다.


그 빈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야 한다. 하지만 빈자리를 채운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똑같이 복제하는 일이 아니다. 베오울프가 했던 일을 모두 그대로 반복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베오울프가 남긴 힘까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조건 안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누구와 동맹을 맺을지, 어떻게 나라를 지킬지, 누구에게 바카라임을 맡길지 판단해야 한다. 베오울프가 살아 있을 때는 그의 판단을 기다리면 되었던 일들이 이제 각자의 판단을 요구한다.


여기서 영웅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남긴다. 하나는 지켜야 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왕국과 백성을 지켜야 하지만,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낼지는 더 이상 베오울프가 정해줄 수 없다.

베오울프의 장례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시신을 옮기고, 왕의 죽음을 알리고, 앞으로의 일을 의논해야 했을 것이다. 작품은 그런 평범한 절차를 길게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왕의 죽음 뒤에는 그런 일이 반드시 따라온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정리해야 하고, 남은 가족과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하며, 빈자리를 어떻게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영웅의 죽음에도 생활의 일은 멈추지 않는다.


오래된 서사시는 특별한 사건을 기록하는 데 익숙하다. 괴물이 나타나고, 영웅이 싸우고, 왕이 죽는 장면은 오래 기억된다. 반면 그 뒤에 누가 무엇을 치우고, 누구에게 어떤 일을 맡겼는지는 이야기에서 쉽게 사라진다.

그렇다고 그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음 이후의 생활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그런 작은 결정들이다. 베오울프가 사라진 뒤 왕국을 이어가는 힘도 결국 그런 결정에서 생겨날 것이다.


영웅의 이름은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이름만으로 집을 지을 수는 없고, 밭을 일굴 수도 없으며, 사람들의 갈등을 해결할 수도 없다. 기억되는 사람과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는 다른 종류의 일이 놓여 있다. 베오울프가 남긴 가장 큰 문제도 그 사이에 있다.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가보다, 그가 없는 상태에서 나라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가 더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한 사람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어려운 결정을 맡으면 조직은 편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그 편안함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베오울프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의 용기와 명성이 그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들이 물러난 모습은 그들이 위험을 함께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를 묻게 한다. 왕이 강한 것과 왕국의 사람들이 강한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위글라프가 남았다는 사실은 그 차이를 더 분명하게 한다. 그는 베오울프의 힘을 대신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았다. 그 이후의 일은 위글라프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왕국의 안전도 한 사람의 용기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충성이 다른 사람들의 바카라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베오울프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래서 용의 죽음만이 아니다. 늙은 왕이 보물을 바라보고 있고, 그 곁에는 젊은 위글라프가 서 있다. 한 사람의 시간이 끝나고 다른 사람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 둘 사이에는 단순한 세대교체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베오울프에게는 이미 살아온 시간이 있었지만 위글라프에게는 앞으로 감당해야 할 시간이 남아 있다. 죽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날들을 맞아야 한다.


베오울프가 죽은 뒤에도 왕국에는 해야 할 일이 남는다. 용의 시체를 처리해야 하고, 보물을 어떻게 할지도 정해야 한다. 왕의 죽음을 알리고 장례를 치러야 하며, 나라를 이끌 사람도 찾아야 한다. 그 일들은 베오울프의 이름을 크게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일들이 한 왕의 죽음 뒤에 놓인 실제 시간이 된다.


영웅은 마지막 전투에서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지키던 땅에서는 다음 날에도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 누군가는 불을 피우고, 누군가는 가축을 돌보고, 누군가는 무너진 것을 고쳐야 한다. 베오울프가 남긴 것은 용을 죽였다는 명예만이 아니다. 자신이 떠난 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왕국도 남겼다. 그 왕국의 앞날은 더 이상 베오울프의 손에 있지 않다.


이제 판단해야 하는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누구의 이름을 기억할 것인지보다 먼저, 누구의 손으로 오늘의 일을 이어갈 것인지 정해야 한다. 영웅의 시대가 끝난 자리에는 영웅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자기 몫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 먼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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