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어릴 적 꿈은 시인이었다. 그러나 집이 가난했고,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공대에 진학해 공장에 취업했다. 틈틈이 써둔 시와 글귀들이 아직도 집 안 어딘가에 잔뜩 남아 있지만, 그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의 어릴 적 꿈은 변호사였다. 그러나 이공계로 진학하는 바람에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그 뒤에는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다 지금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건지, 갑자기 소설가를 꿈꾸고 있다.
뭐 이런 일관성 없는 전개가 다 있나.
한때 아이패드 드로잉을 배운 적이 있다. 사람을 그리면서 그제야 처음으로 팔다리가 정확히 어디에 붙어 있고, 관절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그린 인물은 늘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선생님이 정말 별것 아닌 부분을 살짝 고쳐주기만 해도, 갑자기 사람다운 모습이 되었다.
글도 비슷했다.
소설이랍시고 몇 번 끄적거려 본 적은 있었지만, 캐릭터 하나를 만들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묘사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천상 공무원 글쓰기에 익숙해진 탓일까.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소설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요즘에는 나 같은 그림 초보가 몇 시간 동안 직접 그리는 것보다 AI에게 몇 마디 입력하는 편이 훨씬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글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내가 열심히 쓴 글을 AI에게 보여주면 어색한 문장을 찾아주고, 부족한 장면을 짚어주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표현도 제안해 준다. 도움을 받지 않았을 때보다 결과물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렇게 완성된 글을 어디까지 내 글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프로그래밍의 세계에서는 AI의 도움을 받는 일이 너무도 당연해졌다. 이제는 AI 없이 혼자서 개발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반면 웹툰의 댓글을 보면, 작품에 AI가 사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
글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언젠가는 작가들이 자신의 글을 잔뜩 AI에게 읽힌 뒤, 자기 문체에 맞게 초고를 고쳐달라고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AI가 고친 글을 다시 작가가 퇴고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스타일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것. 지금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런 작업 방식이 언젠가는 자연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무엇일까.
어쩌면 AI가 흉내 내기 전에 내가 먼저 써둔 문장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랫동안 쌓아온 자기만의 말투와 시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온라인카지노에 남아 있는 예전의 글들은 내게 꽤 소중하다. 잘 쓰든 못 쓰든, 그 안에는 그때의 내가 직접 고른 단어와 문장의 리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도 지금 AI에게 보여주고 있다.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한번 봐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