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꽤 웃긴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인생이 너무 엉망이라 말만 해도 사람들이 웃었다.
10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그런 시절이 있었다. 3~4년 차 사무관에게는 벅찰 만큼 난도 높은 업무를 맡고 있었고, 심지어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와도 막 헤어진 직후였다. 흔히 말하는 워라밸은 일과 삶 양쪽에서 동시에 무너져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람들을 잘 웃겼다. 내가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만 해도 친구들은 빵빵 터졌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를 보면 “그래도 형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는 동생도 있었고, 내 얼굴만 봐도 소주가 당긴다며 술자리마다 나를 부르는 동생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막 대하는 태도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정말 사주라는 게 있는 걸까.
마흔이 되면서 인생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결혼도 했고, 새집으로 이사도 했다. 남들처럼 사는 일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 시기는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점점 평균적인 삶에 가까워졌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인정받았고, 가정도 평온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이제는 친구들에게 위로는커녕 부러움을 사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분명 내 대화 주제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일상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반응은 달랐다. 사람들은 과거의 나는 무슨 말을 해도 꿀잼이었는데, 지금은 다 자랑처럼 들린다고 했다. 자중 좀 하라는 말도 들었다. 거기에 유학과 승진까지. 어느 순간부터는 부러움을 넘어, 남들의 눈치를 보며 말조심을 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3월, 아내의 봄방학에 맞춰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니언을 다녀왔다. 꿈에 그리던 그랜드캐니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사진을 곁들여, 공무원의 시선에서 여행 중 느낀 점을 잔뜩 적어두었다. 하지만 결국 온라인카지노에 올리지 못했다.
여름방학에는 워싱턴에도 다녀왔다. 그때도 글을 쓰지 못했다. “휴직 중에 맨날 놀러 다니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났다. 글을 적었다 지웠다 하다 보니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곧 한국에 돌아간다. 휴직 신분인 내가 국외훈련을 나가기 위해서는 귀국해서 복직한 뒤 다시 출국해야 한다. 비자 인터뷰도 새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미국에 오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는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미국인들과 함께 듣는 로스쿨 수업을 따라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테니까. 나의 고통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이 될 것이다.
어쨌든 재미있는 글을 쓰려면, 지금처럼 내가 너무 행복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