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런데…… OO이는 자꾸 거짓말을 해.”
저녁을 먹던 여덟 살 라온이가 말했다. OO이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학교 생활 이야기에서 ‘상당한 말썽꾸러기’로 자주 등장했으니까.
“그래? 어떤 거짓말을 하는데?”
“몰라. 잘 기억이 안 나.”
“그렇구나. 그 거짓말을 들으면 라온이는 어떻게 해?”
“‘아니지?’라고 해.”
“그러면 OO이는 어떻게 해?”
“정말이라고 해. 아니면서…….”
말끝을 흐리며 내뱉은 옅은 한숨에 답답함이 묻어 나왔다. 라온이는 거짓말을 불편해하는 아이다. 맑게 닦은 유리창같이 투명해서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빠의 거짓말 냄새 풍기는 농담에도 혼란스러워했고, 수사관처럼 진실을 집요하게 물었다. 만약 아빠가 익살맞게 웃기만 하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까지 쳤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조금이나마 융통성이 생긴 덕에 거짓말과 농담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아주 가끔은 사실과 다른 말을 섞어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일부러 속은 척해주었는데, 라온이는 곧바로 씩 웃더니 “사실은…….”하며 이실직고했다. 그렇게 재빨리 거짓말을 털어버림으로써 투명함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니 학교에서 친구의 계속된 거짓말에 어떤 기분이었겠는가! 진실을 알지 못하는 답답함은 물론이요 자신을 놀리는 듯한 태도에 더욱 언짢았을 것이다.
“우리 라온이가 친구의 거짓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구나?”
“응.”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과연 거짓말은 듣는 사람 마음만 불편할까? 하는 사람은 어떨 거 같아?”
“음…… 불편해.”
“왜?”
“왜냐하면 계속 거짓말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 말을 안 믿어주니까.”
어린이의 십중팔구는 거짓말의 안 좋은 점에 대해 라온이처럼 말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년의 이야기를 알아서다. 양을 치다가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반복한 그 소년.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결말은 제법 충격적이다. 그 효과로 어린이는 거짓말로 인한 비극을 간접 체험하고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하기도 한다.
“그렇지. 거짓말이 쌓이면 결국 그렇게 되지.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 불편한 또 다른 이유가 있거든. 그게 뭘까?”
라온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 상자를 더듬었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엄마와 형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섯 살 로운이가 자신감 있게 나섰다.
“왜냐면 양치기 소년도 계속 늑대가 나타났다고 해서 결국 사람들이 안 믿어줬잖아.”
역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야기의 위력은 대단하다. 어린이가 ‘거짓말’이라는 주제에서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는 건, 마치 무릎 반사나 다름없는 것 같다. 작은 망치로 무릎을 톡 치면 다리가 자동으로 펴지는 현상 말이다.
라온이도, 로운이도 거짓말쟁이의 비극으로 양치기 소년이 겪은 일까지만 생각한다. 그런데, 엉뚱한 가정을 해보자. 만약 그 소년이 거짓말을 들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거짓말에 속는 사람들 모습에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고, 그 즐거움에 취해 거짓말을 멈추기는커녕 눈덩이처럼 불렸을 것이다. 거짓말쟁이라는 걸 안 들켰으니 사람들로부터 불신당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거짓말쟁이는 결국 더 심각한 비극을 맞이하고 만다. ‘불안’과 ‘불신’이 만드는 늪에 점점 더 빠지게 된다. 나는 여섯 살, 여덟 살배기의 눈높이에 맞춰 그 늪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래. 그랬지. 그리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속으로는 엄청 불안해. 자기가 거짓말한 걸 들킬까 봐. 만약 들킬 거 같으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지. 그러면 또 불안해지고. 계속 이렇게 불안함 속에서 지내는 거야.”
로운이가 눈을 번쩍 뜨더니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만화에 나오는 그 친구는 계속 거짓말을 하잖아.”
“맞아. 툭하면 거짓말을 하지? 그런데 이런 점도 있어. 얼핏 보면 그 친구는 누군가를 속이고 나면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저 사람이 내 말에 완전히 속았네! 역시 나는 대단해.’하면서 신나 하는 거 같지. 하지만 사실은 안 그래. 그 친구는 속으로는 엄청 괴로워. 왜냐면 자기가 늘 거짓말만 하니까 다른 사람도 모두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거든.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저 사람 지금 나 속이는 거 아니야?’하고 의심하지. 아무도 못 믿는 거야. 아휴, 얼마나 기분이 안 좋고 괴로울까? 그래서 엄마는 거짓말을 안 해. 마음 편한 게 좋거든.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도 거짓말 안 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좋지?”
“응.”
“좋아, 이제 밥 맛있게 먹자.”
라온이는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서 입에 넣고 경쾌하게 오물거렸다. 기분이 더없이 좋아 보였다. 당연히 그러겠지. 지금껏 거짓말을 멀리해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새삼 느끼고, 그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한가득 충전했을 테니까.
아이들은 그날의 대화로 또 다른 ‘거짓말의 비극’을 알게 됐다. 이것을 평생토록 머릿속에 담아 거짓말에 대한 경계벽을 튼튼히 하고 행복을 지켜내면 좋겠다. 어린시절 알게 된 것을 어른이 되어도 기억하려면 이야기의 형식을 이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엄마표 이야기의 날’이 있다. 나는 아이들의 잠자리에서 내가 창작한 동화를 들려주곤 한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이고, 녀석들이 그날의 제목만 듣고 선별해온 인형들을 등장인물로 한다. 두 형제의 취향을 저격하는 재미 요소를 중간중간 넣어가며 감동과 교훈을 주다 보니 반응이 제법 좋다.
다음에는 어떤 인형이 주인공이 될지, 흐름은 어떻게 가져갈지 등이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단 주고 싶은 교훈은 이렇다.
‘거짓말쟁이는 불안과 불신으로 괴롭답니다.’
내가 만든 동화가 ‘양치기 소년’처럼 전세계 어린이에게 영향을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안 그래도 괜찮다. 내가 지구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아이가 ‘거짓말’이라는 주제에서 나의 동화를 무릎 반사처럼 떠올린다면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