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동안의 꿈나라 여행을 마치고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꾀꼬리같이 “엄마, 안녕!”하며 인사를 건네는 라온이였다. 하지만 그날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체온을 재보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부담 없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든 등교시키고 싶었다. 벌써 5학년. 앞으로 1년하고 한 학기만 버티면 개근상을 거머쥐게 된다.
서둘러 식사를 준비하려던 찰나 문득 라온이의 1학년 담임이 학기 초에 부모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덕분에 내가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는 중인 걸 깨달았다.
“아이가 아프면 무리하게 등교시키는 대신 집에서 충분히 쉬게 해주세요. 요즘은 개근상에 그렇게 욕심 안 내도 괜찮습니다.”
이 말에 감탄 섞인 짧은 한숨이 나왔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은 개근상에 집착(?)하는 분위기였다. 가정마다 정도만 다를 뿐 학교에는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한 지인은 아무리 아파도 부모가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죽더라도 학교에 가서 죽어야 한다.’라고. 그 마음을 이해한다. 자녀를 지도할 때 ‘성실’과 ‘바카라임’ 최우선 가치로 둔 것이니까. 하지만 요즘은 그토록 악착같이 개근상을 따려는 건 자칫 다른 아이를 전염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여 나는 결심했다. 내 아이의 첫 개근상을 미련없이 떠나보내기로.
라온이는 장염 증상을 보였다. 며칠간 피자, 치킨, 아이스크림, 젤리, 과자를 과하게 먹었으니 장이 지칠 만도 했다. 회복을 위해서는 몸에 쌓인 해로운 물질을 내보내야 했다. 다행히 라온이가 낮잠을 자다가 한 번씩 일어나서는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가서 큰일을 봤다. 나는 평소에도 아이의 배변 소식에 축하나 칭찬을 해줬는데 그날은 물개박수까지 쳤다.
“우와! 잘 됐다. 이렇게 계속 독소들이 몸 밖으로 나가면 금방 나을 거야.”
내내 편안히 누워 푹 쉬면서 수시로 독소를 몰아낸 덕분인지 라온이의 상태는 양호했다. 비록 배가 고프지 않다며 음식을 조금만 먹었지만 힘들어하지는 않았다. 안색은 점점 좋아졌고 나와 도란도란 대화도 나눴다. 밤이 돼서는 명랑한 꾀꼬리가 되어 농담까지 건넸다. 그대로 푹 자면 아침에 산뜻한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다음 날 아침.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눈을 뜨자마자 체온을 잰 라온이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열이 더 올랐다고.
결석 2일 차는 무거운 잿빛이었다. 라온이는 뭐든 먹으면 이내 토해버렸다. 그리도 좋아하는 귤을 한 알만 먹어도 바로 화장실로 가서 우웩우웩했다. 너무 춥다며 이불로 몸을 꽁꽁 감싸 번데기가 되었다가 곧이어 너무 덥다며 이불을 걷어찼다. 종잡을 수 없는 몸상태에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서는 툭하면 목소리로 천장을 뚫을 기세로 외쳐댔다.
“엄마, 와! 엄마, 와!”
내가 곧바로 가주지 못하면 짜증 섞인 재촉이 집안에 퍼졌다. 하는 수 없이 부랴부랴 곁으로 가면 라온이가 내 손을 꼭 잡고 옆에 눕게 했다. 어디 가지 말고 옆에만 있으라면서.
엄마가 곁에 있다는 안도감은 녀석을 금세 꿈나라로 보내주었다. 그제야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살금살금 움직였다. 빨래건 청소건 최대한 숨을 죽이고 했다.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닌데도 들킬까 불안해하는 게 어이없긴 했지만, 잠깐이라도 방해 없이 집안일을 할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잠에서 깬 라온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동작 그만’이 되곤 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의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때보다 배로 힘들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날카로운 라온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비위를 맞춰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왠지 모를 찜찜함이 맴돌았다. 나의 대처가 라온이의 회복에는 도움 될지 몰라도 훗날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봐야 했다.
이럴 때는 단순 작업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라온이가 잠든 틈을 타 빨래 바구니에 쌓인 수건들을 한 장씩 단정히 개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라온이가 환자로서 다르게 행동하도록 도와야 했다. 안 그러면 과거에 본 누군가처럼 될 수 있으니까.
때마침 잠에서 깬 라온이의 짜증 섞인 부름이 들렸다. 녀석에게 다가가서 복숭아 같은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잤어? 엄마가 옆에 없어서 빨리 오라고 한 거지?”
“응.”
“라온이를 보니까 한 어르신이 생각나네.”
“누군데?”
“예전에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옆에 있던 환자. 그분도 할아버지처럼 말기 암이었어. 말기 암이면 몸에 통증이 엄청 심하대. 생각해봐. 이 손바닥을 문틈에 놓은 채 문을 아주 세게 쾅 닫으면 엄청 아프겠지? 말기 암이면 그것보다 10배 이상이나 아프대. 그래서인지 그분은 툭하면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짜증 내고 화를 냈지. 그 병실은 환자 2명만 있는 2인실이었는데, 그분은 결국 1인실로 옮겼어.”
“1인실이 안 좋은 거야?”
“다른 환자를 신경 안 써서 좋긴 하지만 병원비가 훨씬 비싸. 무엇보다 그분의 가족은 어쩔 수 없이 1인실로 옮겼던 거야. 옆 환자랑 보호자들에게 미안하니까. 그 가족은 이래저래 정말 힘들어했어. 누군가 병원에 입원하면 보호자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계속 환자를 돌봐야 해서 몸이 참 힘들어. 그런데 그분의 가족은 환자의 짜증 때문에 마음까지도 몹시 지쳤지. 아마 그분은 자기 아픈 것만 생각한 나머지 가족이 힘든 건 생각 못했던 거 같아.”
그 순간 라온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환자로서의 자신을 돌이켜보고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녀석이 바르게 자라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바람직한 성찰이 되려면 잘못을 깨닫는 것에 멈추면 안 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른 행동까지 생각해내고 실천으로 이끌어야 한다. 나는 라온이의 성찰이 그런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데 도움 될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라온이 할아버지는 어땠는지 알아? 너무나 착하고 예의 바른 환자였어. 의료진이 주사를 놓거나 체온을 잴 때마다 고맙다고 하셨지. 가족들에게도 부드럽게 부탁하셨어. ‘목이 마른데 물 좀 줄래?’ 하는 식으로. 통증도 정말 잘 참으셨어. 어마어마하게 두꺼운 바늘의 주사를 맞을 때 소리 지르거나 짜증을 내지도 않으셨어. 아프니까 인상은 완전 찡그렸지만, 소리 내는 건 참으셨던 거야. 후우, 할아버지 얘기하니까 너무 보고 싶다. 음…….”
잠시 말을 멈추고 말았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배려와 선함을 잃지 않았던, 환자복 차림의 아빠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내가 감정을 추스르는 동안 라온이는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공룡 모양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운 채 나를 보는 눈망울이 맑고 따뜻했다.
“할아버지 참 대단하시지? 인성이 훌륭한 환자라서 그랬던 거야. 본인 때문에 다른 사람이 힘든 건 원치 않으셨던 거지.”
“엄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잖아. 그럼 옆에 있던 분은 어떻게 됐어?”
“1인실로 옮긴 후 며칠 뒤에 돌아가셨어. 그분 가족이 우리 병실에 와서 알려줬지.”
라온이가 입을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눈을 껌뻑이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라온아, 어서 나으려면 이제 좀 쉬는 게 좋겠다. 한숨 자. 그동안 엄마는 일 좀 할게.”
“그래.”
잠에서 깬 라온이가 어김없이 나를 찾았다. 이번에는 상냥하고 정중한 말투였다.
“엄마, 이쪽으로 와줄 수 있어?”
내 손을 잡을 때는 홱 낚아채지 않고 부드럽게 살포시 잡았다.
“엄마, 나 아주 잘 잤어.”
“잘했네. 이제 금방 났겠다. 배고프지 않아? 뭐 좀 먹을래?”
“괜찮아.”
“우리 라온이가 엄마한테 엄청 예의 바르고 정중하네. 혹시 아까 할아버지 얘기 듣고 달라진 거야?”
나의 소중한 천사가 수줍게 웃으며 “맞아.”라고 했다.
“아유 예뻐라. 우리 라온이는 앞으로 대부분 건강하게 지낼 거야. 그런데, 아주아주 가끔 아플 수도 있을 거고, 언젠가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돌봐줄 수도 있어. 그때 그 사람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지?”
“응.”
나는 아빠와 그 옆 환자를 보고 다짐했었다. 내 아픔만 생각하며 짜증 내지 말아야겠다고. 이왕이면 좋은 인품의 환자가 되어야겠다고. 아빠의 말기암은 분명 큰 슬픔이었지만, 그 슬픔의 농도만큼이나 진한 깨달음을 안겨준 것이다. 부디 이 다짐을 지켜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공자가 말하는 ‘하급’에 해당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 나의 아빠처럼 ‘상급’에 속하지는 못하더라도 ‘하급’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고, 곤란을 겪고 나서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며, 곤란을 겪고 나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하급이다.'
- <논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