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웬수

by지금


길을 걸을 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대신 꼭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 어깨를 감싸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오산. 멱살 잡는 모양새로 내 어깨 위 옷을 움켜쥔다. 아프다고 놓으라고 해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멀리서 우리의 모습을 본 동네 엄마들이 “어머어머~ 남편이 사랑꾼인가 봐. 뭐야뭐야~ 다정해~!” 하면서 난리가 났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들어주는 건 나의 몫. 탈모가 두려운 그는 내 옆에 딱 붙어서 나의 극진한 에스코트를 받는다. 맞은편에 걸어오는 모든 커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남자가 우산을 들어주고 한쪽 팔로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봤어 봤어? 나만 우산 들고 있어!” 하니 "내가 항상 고맙게 생각해^^" 하고 찡긋 웃고 마는 그다.


일 년에 설거지해주는 날이 손에 꼽는데 마침 그날인 거 같아서 눈치를 살피다가 설거지 좀 부탁한다고 했더니 할부가 되냐는 신박한 드립을 날린다. 어떤 날은 마임하듯 내 뒤에 서서 손만 움직이며 원격 설거지를 하지 않나… 귀신에 홀린듯 어이없어 웃다가 정신 차려보니 수세미는 또 내 손에…


발을 씻고 나온 나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종아리로 향한다. “오 진짜 멋있어. 장관이야 “. 가늘고 곧게 뻗은 그의 다리와는 차원이 다른 나의 다리가 봐도 봐도 신기한가 보다. 손바닥을 펼쳐서 다리에 이리저리 대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다음 생엔 나처럼 태어나랬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건 아니란다. 약이 오른다.


그는 항상 팔베개를 해주는 대신 내 팔을 베고 누웠다. 말랑말랑 폭신한 촉감이 어떤 베개와도 비교할 수 없다며 특허를 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거기에 딸들까지 합세한 뒤로 내 모습은 흡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따로 없었다. 두 팔 벌리고 누워 잔 지 십여 년. 내 팔뚝이 갈수록 두꺼워지는 이유가 이거였네.




제목을 사랑하는 나의 웬수라고 썼다가, 웬수같은 내 사랑이라고 썼다가 아무튼 그게 그거 아니냐며 아무거나 쓰기로. 사랑하긴 하나보다.

아직도 남편에게 온라인카지노 글을 공개 못했다. 처음에는 궁금해죽겠어 하더니 이제는 데스노트 쓰는 거냐면서 보복당할까 봐 못밝히냐길래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정말이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지만 이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웃었다. 그와의 에피소드를 적으며 혼자 키득키득 웃는 나를 보면서 이런 게 사랑인가 생각한다. 아무튼 미워할 수만은 없는 웬수인 것도 맞는 걸로.


작가의 이전글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