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의 '희랍어 시간'을 읽고
오랜 숙제를 풀어 내는 듯 이제야 읽은 한강 작가님의 문장은 소설이라기보다 시에 가깝다. 짧고 절제된 호흡, 페이지 곳곳에 번지는 고대 희랍어의 파편과 시적 문장들은 바카라장을 넘기는 내내 묘한 신비감과 선문답 같은 긴장을 유발했다. 이 낯설고 아득한 문체 속에서, 작가는 외부와의 연결 고리가 끊겨가는 두 사람의 궤적을 담담하게 교차시켜 나갔다.
한 사람은 점점 빛을 잃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목소리를 잃었다. 보는 행위가 외부의 세계를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이라면, 말하는 행위는 내밀한 자아를 타인에게 닿게 하는 통로다. 그래서 시력을 잃어간다는 공포와 말을 멈추어버린 침묵은, 각자가 겪은 깊은 상흔 앞에서 세상과의 연결 다리를 끊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과정 같았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두 사람은 외부와 소통하는 가장 결정적인 통로를 닫아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소설은 이들을 단절의 심연에 방치하지는 않았다. 더 이상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고대 희랍어를 매개로, 두 결핍은 기묘한 방식으로 마주한다. 화려한 수식이나 소음 같은 감정의 과잉이 소거된 자리. 극도로 제한된 감각과 표현만이 남은 그 빈터에서 정제되고 섬세한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말을 잃은 여자가 빛을 잃어가는 남자의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어 내릴 때, 그것은 가장 조용하지만 단절을 넘어 다른 존재의 내면을 향한 타전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언어로 쓰여진 글인데 여백이 넉넉한 한 편의 추상화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아득한 호수나 바다처럼 잔잔한 수면위에 윤슬같이화려하다고 하기에는 담담하고 그러다고 소박하다고 하기에는 울림이 있는 표현들이 마음에 그림을 그렸다. 고요한 자연의 모사 위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찍어놓은 푸른 점 하나 그리고 그 주위를 일렁이는 침묵을 가만히 응시하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여운이 조금은 오래 남는다. 화려한 영상과 끊임없는 소음이 지배하는 시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각의 범람에 의존하며, 그로 인해 얼마나 쉽게 번잡하고 또 흔들리고 있는가. 매일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가슴속 깊은 외로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걸어 잠그고 있는가. 어딘가에서는 늘 외롭고 그래서 손을 내밀지만 그래서 또 부담스러운 그 모순 사이 어딘가에서 서 있는 나는 소설 속에 그와 그녀처럼 눈을 감고 말을 삼킨다. 그 침묵과 어둠이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