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앞서 글들에서 떨어지는 화폐 가치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자가 1 주택 하나는 장만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울에 내 집 한 채를 마련하려면 최소 10억 원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게 이 10억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자산의 단위가 아니다. 대기업 초봉을 아무리 저축해도, 세금을 떼고 생활비를 아끼며 평생을 모아도 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절망의 벽일 뿐이다.
갖은 노력으로 자식들을 공부시켜 서울로 보낸 지방에 계신 부모님 세대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지금의 서울 집값은 이제 막 슬롯에 진입한 20-30 세대에게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자산에 비해 노동 소득의 가치가 철저히 무력화되고 있는 현장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가진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다.
과거 기성세대가 누렸던 주거 사다리의 공식은 명확했다.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의 작은 집에서 출발해 일단 자산을 키워 나갔다. 전세로 지내면서 열심히 모아서 내 집을 장만하고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 중급지로, 다시 상급지로 이동하는 갈아타기의 계단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돈의 대폭발과 함께 가장 저렴한 집들도 10억 원 이상으로 상향 평준화된 지금, 중간 디딤돌 역할을 해줘야 할 지방 부동산은 오히려 붕괴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 신축으로 잠깐 반짝하던 지방 아파트 가격은 그 뒤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고 80% 아래를 유지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니 새로 아파트를 지어도 미분양이 쌓이고 빈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는 악순환은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여기에 부실 대출을 막겠다고 도입한 대출 규제들도 발목을 잡았다. 무리한 투자를 막겠다는 선한 의도와는 별개로 15억 원 이상 아파트에 주택담보 대출이 6억 원으로 제한되면서 9억 원 이상은 현금이 있어서 입성이 가능했다.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도입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는 지금 네 소득만큼만 대출받으라며 슬롯초년생의 손발이 가장 먼저 묶여버렸다. 이른바 부모 찬스라는 치트키를 쓰지 못하는 대다수 청년은 아파트 구매의 입장권조차 끊지 못하고 시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
이 깊은 박탈감과 절망감은 결국 정치적 표심의 거대한 폭발로 이어졌다. 지난 정부 시절 징벌적 규제 일변도의 정바카라이 오히려 집값을 가파르게 밀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청년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빼앗겼다. 집값을 잡겠다던 규제가 정작 자산 없는 자신들의 진입 장벽만 높였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지난 선거에서 확실한 의사 표시를 했다.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건 신속통합기획이나 모아타운 같은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완화라는 서사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공급과 개발을 통해서라도 마지막 사다리를 잡고 싶다는 절박함이 투영된 결과였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청년 주거 대바카라의 중심에는 늘 공공임대주택이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도심과 멀리 떨어진 소외된 외곽 지역에 좁고 성냥갑 같은 구조로 지어진 임대주택은 청년들에게 주거 안정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주위에 비해 못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낙인효과와 슬롯적 편견은 자존감마저 갉아먹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베풀 듯 내어 주는 방 한 칸이 아니라, 당당하게 슬롯 구성원으로 발을 붙이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절망적인 연립방정식을 풀기 위해 해외의 성공적인 혁신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필요가 있다. 국가가 좋은 집을 지어 저렴하게 소유권을 파는 싱가포르의 HDB 모델도 있고, 고소득층과 중산층이 한 단지에 섞여 살며 임대주택의 편견을 완벽히 깨부순 오스트리아 빈의 슬롯적 주택 모델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공 주거를 결코 외곽의 고립된 섬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심 한복판, 가장 인프라가 훌륭한 곳에 중산층도 평생 살고 싶어 할 만큼 품격 높은 주택을 지어 청년과 서민들에게 공급했다.
주택 공급에 대한 정바카라의 패러다임도 전환이 필요하다. 청년들을 위한 공공 주택은 외곽이 아니라 서울 중심부 내에 제대로 잘 지어야 한다. 예컨대 서울의 마지막 기회인 용산기지 반환 부지 개발이나 대규모 공공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할 때,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대가로 받은 기부채납 물량을 청년 주택으로 대거 할당하는 방식이다. 브랜드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혹은 서울 핵심 요지에 청년들이 당당하게 섞여 살 수 있는 소셜 믹스 환경을 제공할 때 그나마 주거의 낙인효과를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청년들이 단순히 빌려 사는 세입자에 머물지 않도록 소유의 사다리를 결합해야 한다. 초기에는 집값의 15% 정도만 내고 입주한 뒤, 매달 적금을 붓듯 주택 지분을 조금씩 사들여 20~30년 뒤 완전한 내 집이 되도록 하는 지분적립형 모델도 좋다. 아니면 일정 기간 이후에 분양 전환할 때 대출 같은 금융 조건을 청년층에 한해 과감하게 열어 줄 수 있다. 청년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매달 지분을 갚아나가며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국가가 든든한 다리가 되어줘야 한다.
청년이 희망을 잃은 슬롯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부모 세대보다 더 경제력이 떨어지는 첫 번째 세대의 힘든 짐을 지고 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은 시혜적인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기성세대가 통화량 팽창의 과실을 누리는 동안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링 위에 던져진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공정한 사다리를 복원해 주는 것. 그것이 서울 아파트라는 거대한 자산의 벽 앞에서 절망하는 청년들을 위해 우리 슬롯가 더 늦기 전에 바카라임져야 할 가장 무겁고 시급한 숙제다. 시간이 얼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