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진보정권의 역설, 왜 그들이 잡으면 집값은..

좋은 의도라도 시장은 흔들렸다.

by이정원

대한민국 자산 시장에는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기이한 징크스가 존재한다. 서민 주거 안정을 표방하고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서울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폭등하고, 오히려 자율 경쟁과 규제 완화를 앞세우는 보수 정권이 집권을 하면 시장이 하락 안정화되거나 보합세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80~94% 폭등), 문재인 정부(119% 폭등)에 이어 최근 이재명 정부의 취임 초반 역시 규제 강화 기조 속에서도 상급지를 중심으로 가파른 재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친서민을 내세우는 정바카라의 결과가 왜 매번 자산 초양극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지. 이런 역설의 이면에는 이념의 프레임을 뛰어넘는 세 가지 거시경제학적 시스템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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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공산품이 아니다.


첫 번째 비밀은 부동산 시장의 독특한 특성인 ‘공급의 시차(Time Lag)’와 정권 교체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어긋난다는 점이다. 아파트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택지를 지정하고 보상을 거쳐 실제 입주에 이르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7년에서 1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서민들에게 살 집도 주고 계속 오르는 집값을 잡기 위해서 진보 정권은 2기 신도시(노무현), 3기 신도시(문재인) 같은 대규모 공급 대바카라을 발표했다.


image.png실제로 2기 / 3기 신도시 모두 진보정권 시기에 삽을 들었다.


하지만 시작한 정바카라이 실제로 아파트로 만들어져 공급되기에는 시간이 걸리 수밖에 없다. 임기 내내 땅만 파고 있을 뿐 눈에 보이는 실물 공급이 없기에, 시장은 임기 내내 공급 가뭄 공포에 시달리며 가격이 폭발했다. 이들이 심은 공급의 씨앗은 다음 보수 정권(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본격적인 대규모 입주 물량으로 시장에 쏟아지며 가격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보수 정권의 부동산 안정은 자신들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전임 진보 정권이 7년 전에 심어놓은 공급 계획을 적절한 타이밍에 수확한 결과에 가깝다. 반대로 보면 공급의 과다로 떨어지는 집값을 떠 받쳐 주기 위해 보수 정권들이 적용한 전세 대출 규제 완화 같은 정바카라들은 시한폭탄이 되어 그다음 진보 정권에서 터졌다.


돈을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두 번째 원인은 대외적 경제 충격이 닥쳤을 때 위기를 방어하기 위해 유동성을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문민정부 이후 진보 정권의 집권기는 유독 글로벌 경제의 거대한 파고와 자주 맞물렸다. 김대중 정부의 IMF 외환위기, 노무현 정부 초기 카드 대란,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현재 이재명 정부가 마주한 트럼프의 독주와 중동 전쟁이 이어졌다.


image.png리만브라더스 사태 이후로 전 세계가 제로금리로 돈을 풀어 댔다.


아무리 내수 부동산을 억누르고 싶어 하는 정권이라도 국가 경제가 침몰하는 것은 그냥 좌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준금리를 낮추고 민생 지원바카라과 정바카라 대출이라는 명목으로 시장에 돈을 주입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그렇게 유동성을 풀던 시기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이때 경기를 살리기 위해 억지로 주입한 유동성은 화폐 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렇게 풀린 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실물 자산이자 환금성이 높은 서울 상급지 아파트라는 피난처로 맹렬하게 쏟아져 들어오며 폭등의 발동을 건다.


설익은 규제는 시장을 왜곡한다.


이렇게만 보면 진보 정권기에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시장의 흐름을 더욱 자극한 것이 진보 정권의 설익은 규제였다. 부동산은 생존을 위한 ‘필수재’이면서 동시에 자산을 지키는 ‘투자재’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가 투영되어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 대한 고민보다 주거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진보 정부는 매매 대출을 옥죄고 임대차 법을 강제하거나 토지거래허가제를 확대하는 등 제재를 가하지만,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이 규제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부동산 정바카라 부작용.jpg이재명 정부의 대바카라들과 아파트값 추이. 대바카라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면 집값은 올랐다.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똘똘한 한 채로 강남 아파트 가격은 더욱 뛰었다. 전세가 상한제를 적용하자 월세로 전환되고 물건이 귀해지면서 전세가가 치솟았다. 대중은 정부의 거친 압박을 앞으로 서울 중심부의 신축 자산은 영영 구하기 힘든 귀한 물건이 될 것이라는 공인된 매수 신호로 받아들였다. 대출을 막으면 현금 부자들만의 리그가 되어 상급지의 희소성이 극대화되고, 전세 제도를 억누르면 매수 대기 가구가 전세 시장에 주저앉아 전셋값을 올리며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한다. 선의로 가득 찬 규제가 도리어 시장의 공포감을 자극해 폭등의 완벽한 기반을 마련해 주는 셈이다.


결국 진보 정권이 부동산을 폭등시켰다는 대중의 비난은 엄밀히 말해 절반만 맞다. 어느 정권이 집권하느냐보다 서울 아파트값의 향방을 결정하는 본질은 전 세계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쥐고 흔드는 미 연준의 금리와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이었다. 그들은 전임 정부가 남긴 공급 절벽의 유산을 뒤집어썼고, 대외 위기를 막기 위해 돈을 풀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무언가를 해 보려고 나섰지만 인간의 욕망을 규제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판으로 불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image.png문재인 정부의 연이은 대바카라들. 큰 호흡이 필요해 보인다.


부동산의 주가가 춤을 추는 것은 정권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대외적 경제 상황과 통화량의 법칙이 빚어낸 냉혹한 자본의 메커니즘이다. 그러니 시장을 자극하는 자잘한 정바카라과 규제들보다 지방과 수도권의 인프라에 투자해서 서울에 살지 않아도 될만한 이유를 만들고, 초고층이 되었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감당 가능한 집들을 늘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지난 20년 동안 시장이 입증한 교훈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의도라고 위안하기에는 우리 삶이 감가상각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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