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대폭발, 녹아내리는 화폐와 서울 아파트라는 피난처

by이정원

혼자서 일하는 프리랜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고 그 안에 숫자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을 즐겨 하지만 그저 관심 있는 것만 보고 듣고 그 안에서만 생각을 가다듬으면 조금씩 갇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의 올초 다양한 부동산 정바카라에 대한 나의 의견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깨닫고 나서 그 허기를 채울 어딘가를 찾았다. 그리고 김원장 기자님께서 운영하시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거기서 얼마 전 서평도 쓴 돈의 대폭발을 읽고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나는 아파트 시장을 보는 시선을 다시 조정했다.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사람들은 욕망하고 좌절한다. 돈이 너무 흔해진 시대에 아파트 공화국이 된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풀어내 보려고 한다.


1부 : 돈의 대폭발, 녹아내리는 화폐와 서울 아파트라는 피난처

2부 : 백약이 무효한 부동산 정바카라, 인간의 욕망을 간과하다

3부 : PIR 비교로 본 한국형 부동산 과열 민낯

4부 : 일본식 붕괴는 오는가? 돈의 대폭발 시대에 생존 방정식

5부 : 끊어진 사다리와 닫힌 문, 20-30세대의 절망을 어떻게 풀 것인가


사실 주식처럼 부동산도 어디에도 답이 없다. 각자의 자산과 상황, 무모함과 도전 정신, 같은 현재지만 어디를 더 가중치를 두고 지켜보면서 미래에 이럴 것이라고 예측하는 과정은 제각각 다르다. 이번 연재도 2026년 6월 현재의 나의 생각을 기록해 두는 것일 뿐이다. 다만 선거에서도 드러나는 여러 세대 간의 갈등을 풀고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로 소외되는 이웃들을 위한 고민에 조금이나 도움이 되면 좋겠다.


1부 : 돈의 대폭발, 녹아내리는 화폐와 서울 아파트라는 피난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숫자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서울의 30평형 아파트 한 채가 20억 원을 호가하고, 조금 더 나은 입지의 신축 단지가 30억 원을 가뿐히 넘어서는 풍경은 이제 기이하지도 않다. 노동 소득의 가치를 아득히 초월해 버린 이 폭등의 시대를 두고 대중은 저마다의 진단을 내놓는다. 정부의 정바카라 실패, 다주택자의 탐욕, 혹은 강남이라는 불패의 입지.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의 이면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거대한 진실이 존재한다. 바로 돈의 대폭발, 즉 유동성의 홍수다.


부동산 시장의 폭등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실제 한국은행이 발행한 돈과 금융을 통해 대출로 증폭된 시장에 풀린 모든 화폐의 양을 측정하는 지표인 광의통화 - M2의 궤적을 따라가야 한다. 본래 한 나라의 통화량 증가 추이는 실질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을 반영하며 완만하게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이 공식은 2008년 미국 부동산 모기지 부실 대출로 인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은행이 망하는 금융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직면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는 규모로 눈을 풀기 시작했다.


image.pngt서울아파트 실거래가 변화와 우리나라 총통화량의 변화. 2012년 2기 신도시 때 잠시 주춤했지만 거의 비슷한 곡선을 보인다.


진짜 대폭발은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찾아왔다. 전 세계를 뒤덮은 전염병으로 사람들은 고립되고 경제 활동이 멈춰 버리자 실물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전 세계는 다시 한번 역대급 유동성을 시장에 쏟아부었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불어난 M2 증가량의 그래프는 같은 시기 서울 아파트 가격의 폭등 곡선과 기울기를 거의 정확하게 같이했다. 자산의 절대적인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했다기보다 시장에 풀린 화폐의 총량이 늘어나면서 화폐 자체의 가치가 그만큼 침몰했다는 뜻이다.


돈이 이토록 흔해지자 인간의 심리는 빠르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돈이 풀리면 마트의 생필품 가격이 오르거나 소비재 매입으로 돈이 흘러갔다. 하지만 자산의 가치가 오르자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내가 가진 현금이 종잇조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근원적인 공포가 대중을 지배하면서 사람들은 소비가 아닌 투자를 선택했다. 당장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기보다,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실물 자산으로 돈을 대피시킨 것이다.


image.png미국에 풀린 돈과 미국 증시 총액도 경향이 비슷하다.


이 유동성의 피난처로 선택된 것이 바로 주식, 코인, 그리고 한국 시장의 정점인 서울 아파트였다. 문제는 이 피난처에 먼저 도달한 이들이 누구냐는 점이다. 돈을 굴릴 수 있는 막대한 잉여 자금을 이미 쥐고 있었거나, 정보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낸 자산가들은 불어나는 유동성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자산을 기하급수적으로 증식시켰다. 그러나 오직 노동 소득에만 의지하며 현금을 통장에 묵혀두었던 이들은 앉은자리에서 자산을 약탈당하는 일명 벼락거지로 전락했다. 돈의 대폭발이 자산의 초양극화라는 비극을 낳은 셈이다.


오르는 집값에 원성이 높아지자 지난 정부들은 이 타오르는 불길을 잡겠다며 여러 차례의 강력한 부동산 대바카라을 쏟아냈다. 다주택자를 적폐로 규정해 대출을 꽁꽁 묶고 세금 폭탄을 투하하며 시장을 압박했다. 정바카라 당국자들은 큰소리를 치며 집값이 곧 잡힐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결과는 우리가 목도한 바와 같다. 정부가 규제의 몽둥이를 휘두를 때마다 서울 아파트값은 비웃기라도 하듯 신고가를 경신하며 폭등했다. 시장의 펀더멘탈을 흔드는 통화량이라는 거대한 가속도를 막기에는 규제라는 브레이크로는 많이 부족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실물 자산이 차오르는 속도를 지탱하는 한 우리는 과거의 기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규제로 누를수록 넘치는 돈이 쏠리는 특정 상급지의 희소성은 오히려 더 강화되는 부작용만 낳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대폭발의 종착역을 어디로 보아야 할까. 팽창한 통화량이 만들어낸 서울 아파트값의 거대한 버블 신화는 과연 앞으로도 영원히 깨지지 않는 불패의 성역일까? (내일 2부에 연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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