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 23. 피렌체의 첫째날 ①
나흘 간 머물렀던 로마를 떠나, 이제 피렌체로 떠납니다. 사실 '로마' 앞에 '정들었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다가 멈칫했습니다. 스물셋의 저는 로마에 정까지 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요. 물론 지금까지도, 유럽의 첫 도시로서 유독 애정어리게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흘은 정까지 들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이지요. 대신, 그 나흘의 기록을 근 한 달을 붙잡고 있었던, 스물여섯의 제가 로마에 잔뜩 정이 든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감정만큼은 그때의 저나 지금의 저나 같을 것입니다. 아쉬움, 그리고 그를 덮어버리는 설렘.
그 설렘만큼이나 불안함이 큽니다. 전날밤 그처럼 대바카라없는 무모함과 근거없는 비겁함에서 한걸음 나아갔다고 자랑을 했지만, 한손에 캐리어를 쥐고 나면 늘 불안함이 끓어오르는 법이지요. 게다가, 어제의 탄탄멘 탓인지 뱃속이 요동칩니다. 아, 어제의 밤산바카라은 용기였을지 몰라도, 어제의 야식은 무모함이었군요. 가뜩이나 위가 약한 놈이, 나흘만에 매운 음식을 들이붓다니, 참 대단한 용기입니다. 그 와중에 제 열차는 연착입니다. 뭐, 유레일 패스를 끊는 그 순간부터 이미 예상한 대목이긴 합니다. 덕분에, 헐레벌떡 서둘렀던 것이 무색하게도, 떼르미니 역과 아주 충분한 이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네요.
열차에서의 시간은 그리 인상 깊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니, 이탈리아 현지인들이 주변을 가득 채웠고, 심지어 의자가 서로 마주 앉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어색했나본데요. 그럼에도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한걸음 비집고 들어온게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신기함에 더해 한 마디 걸 용기도 갖췄다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저에게는 과한 요구인 것도 맞습니다. 로마 편에서는 내내 "왜 그때는 그것들을 몰랐느냐"고 들들 볶아댔으니 피렌체 편에서는 조금 덜 다그쳐보자고, 나아가 스물여섯의 마음의 소리보다 스물셋의 생생한 목소리에 더 귀기울여보자고 다짐해봅니다.
피렌체 여행의 처음이자 끝이 될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닿았습니다. 역을 나오자마자 역이 이름을 따온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보입니다만, 한손에 캐리어가 있으니 일단 숙소로 향합니다. 물론 숙소에는 짐만 맡겨놓을 생각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숙소에서 허비하고 싶지 않을 뿐더러, 애초에 체크인 시간도 안됐거든요. 원래 이때 바로 한국인 동행을 만나러 갈 계획이었는데요. 일정이 조금 딜레이된 상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저 혼자 이런저런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충격적이게도 다시 중식당입니다. 심지어 마라샹궈를 시켰더라고요. 시간이 떠서 적당히 가장 저렴하고 만만한 음식을 찾았다고는 하는데... 그 전날밤의 탄탄멘 때문에 배탈이 났다면서 또 마라샹궈를 뱃속에 들이붓는군요. 그 날 실제로 배가 아팠던 저 미련한 놈은, 스물여섯의 저도 느끼는 이 어색함을, 정녕 못 느낀 걸까요? 그 와중에 "향신료향이 진짜 한국서 먹은 샹궈 이상으로 났어"라며 신나하는 모습이 어이없습니다. 그래도 중식에 대한 애정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모습은 흥미롭네요.
다음으로 향한 곳은 피렌체 가죽시장입니다. 피렌체가 가죽산업으로도 유명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약간의 죄의식을 갖고 가죽시장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기준으로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생활을 끝낸지 얼마 안된지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민망하네요. 3년 전에는 가지고 있던 그 감각을 지금에는 회상으로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차라리 생각이 뚜렷이 변한 것이라면 떳떳할텐데, 그저 시간에 그 감각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리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생각만큼만 살아내는 일도 참 어렵네요.
참고로 이 골목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은, 사실 제 일기에는 그리 자세히 써 있지 않습니다. 그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기반이 되는 일기의 탄생 배경 때문입니다. 당시의 생생한 일기는 처음에는 부모님께 지금 이렇게 잘 놀고 있다고 실시간으로 보고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한데, 이곳 가죽시장 방문은 부모님 선물을 사기 위한 것이었지요. 저는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었기에, 일기에 이때 있었던 일을 막 자세히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골목에 대한 글이 짧아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록은 부실해도, 기억이 선명하거든요.
이곳에서 제가 만난 건, 어느 가죽가게 사장님이었습니다. 살레르노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급하게 결정한 가죽시장 방문. 이 날 아침 열차에서도 "어떻게 해야 호구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여기저기 웹서핑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끝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장님이 있는 어느 가게를 찾아냅니다. 방글라데시 출신이신데, 한국에 머무신 적이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나게 찾아갔죠. 근데, 기대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여행에서 "실제로 싸게 샀는가?"는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 아닐 겁니다. 많은 경우 "원래보다 비싸게 샀다"는 불쾌함을 피하기 위한 장대한 여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다들, "나중에 더 싼 가격으로 팔고 있는 걸 볼 때" 더 기분이 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이 사장님이 정말 좋았습니다. 정말 편안하게 해주시더라고요. 친숙한 한국어로, 게다가 직설적이고 솔직한 말투로. 갑자기 동네 시장 아저씨를 만난 기분이랄까요.
물론 더 깎아내려고 한다면 더 깎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그 한국어로 된 친절한 응대에도 이미 프리미엄이 매겨져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물건의 값에는 그 구매 경험이 선사하는 편안함조차 포함되어 있는 거니까요. 머나먼 이국에서 만난 우리말. 그보다 더 신기하고 기쁜 경험이 또 어디 있을까요? 아무튼, 그 당시의 기록을 그대로 빌려오자면, "이 시장 믿을 사람 1도 없다는데 그 안에서 오아시스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백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언뜻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아니, 얘는 도착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피렌체와의 첫 만남 대신 아시아와의 재회를 했네. 왜 3년 전에는 그 생각을 못했지?" 그런데 그 얘기를 쓰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린 순간 경고음이 머리를 가득 울립니다. 저는 어째서, 어느 중국계 식당 주인을, 어느 방글라데시계 가죽가게 주인을, 피렌체가 아닌 것으로 분류한 것일까요? 그들에게서 여전히 아시아의 친근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피렌체를 코카시안들의 공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제 삶의 원칙에 어긋나는데 말입니다. 심지어, 이 가죽가게에 대한 단락에서 인종주의에 대해 고민하려고 계획까지 세워뒀던 터라 더 허탈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그렇게 머리에 힘주고 있었는데, 결국 제가 인종주의적 시선을 반복했군요. 무척 부끄럽습니다. 이 고백을 하지 않고 싶을만큼. 그렇지만 솔직하게 남겨야겠지요. 생각만큼만이라도 살아내려면.
어쩌면 피렌체를 박제된 르네상스의 도시로 바라봤던 것은 저의 편견 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그 안에는 다채로운 삶이 박동하고 있는데도요.
아무튼, 이제 만족스러운 쇼핑을 끝내고 드디어 동행을 만나러 갑니다. 가는 길에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온통 노란 빛으로 가득합니다. 피렌체를 붉은 빛의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렇듯 노란 빛도 적잖았군요. 아니, 땅에서 본 피렌체는 오히려 노란 빛의 도시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여행바카라자들은, 그리고 심지어 그 땅을 디뎌본 저조차도, 피렌체를 붉은 빛의 도시로 기억합니다. 아마 조토의 종탑이나 두오모, 혹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 본 피렌체가, 정말로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한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붉은 빛의 지붕들이 여전히 진실이고 아름다울지라도, 한편에는 노란 빛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삶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는 다 읽어낼 수 없고, 오로지 땅에서 곁을 바라볼 때에만 그 고유한 노란 빛을 보여줄테니까요. 그나저나 스물여섯 쪽이 다시 시끄러워졌군요. 이것에 대한 반성을 내놓으며 다시 스물여섯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 이만 다시 스물셋의 장면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노란 빛의 골목을 열심히 걷다보니, 산 로렌초 성당과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모두 스쳐서 시뇨리아 광장에 닿게 됐습니다. 그리고 시뇨리아 광장에 닿기 전에 이 영상도 하나 남겨놨더군요. 가는 길에 어쩌다보니 레푸블리카 광장에도 발이 닿았던 모양입니다. 저 회전목마 앞에 직접 가보고 싶어 했던 기억은 남아 있는데, 정작 이 영상을 찍은 기억조차 없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나서도, 이걸 정녕 내가 찍었던가 싶을만큼 기억이 전무해요. 그래도 영상이 기억의 여지를 남겨줌에 감사해야 하는 거겠죠.
한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와의 첫 대면만큼은 기억이 선명합니다. 정말 콜로세움 못지 않게 인상적인 첫만남을 주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저 멀리에 그 고혹적인 자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한 100m 마다 새로운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노란 빛 한가운데의 흰색과 붉은색. 그 이름마따나 정말 꽃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러나 놀라운 건, 이 첫 만남이, 제가 피렌체를 걸으며 경험한 열 번에 가까운 만남 중에, 최고의 만남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꽃이 그렇듯, 바로 옆에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필 때에 또 다르고, 저녁깨에 어둑한 하늘 아래 마주했을 때 또 다르더라고요. 이 지점까지 콜로세움과 닮았군요. 랜드마크라는 짐을 짊어지려면 그 정도의 매력과 다면성은 필수인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