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시작

너의 시간 속으로 13화

by다별

서연이 눈을 떴을 땐, 리옹 페라슈 역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었다.

"선배, 깼어요?"


준겸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한참을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었다는 걸 깨닫고는, 서연은 좀 당황스러웠다. 그냥 좀 부끄럽다는 기분이 아니라, 무척 예민한 편인데도 마치 밤새 푹 자고 일어난 기분이 들 만큼 그의 어깨가 참 편안했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떼제베를 타면 파리에서 두 시간밖에 안걸리는 프랑스 제 2의 도시, 리옹! 두 사람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옹의 구시가지, Vieux Lyon [비외 리옹, vieux = old] 부터 함께 산바카라했다. 점심으론 간단히 쟝봉-뵈르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나서 서둘러 향한 곳은, 도시 어디서나 보이는 리옹의 랜드마크! 선우 집에 걸려있던 사진 속 바로 그 곳,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La Basilique Notre-Dame de Fourvière


성당이 있는 푸르비에르 언덕에 올라가니, 리옹 시내와 예쁜 지붕들이 한 눈에 보였다.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성당의 외관에 압도당한 것도 잠시, 둘은 한참이나 말없이 같은 곳을 내려다보며 나란히 서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 사크레쾨르 성당을 보러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갔다가 거기서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에 넋을 잃게 되듯이.

"이제 성당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그래, 그러자."


서연은 성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는다. 준겸은 말없이 그녀 뒤를 따른다.

금장식이 돋보이는 모자이크화로 모두 이루어진 천장과 바닥, 그리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대성당 내부 역시 아름답다는 말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성당이 그 자리에 있었던 세월을 모두 간직한 그 공간에는,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찬 사람조차도 숨을 고르는 그 짧은 사이에 눈물이 고이게 만드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다.


'선우는 나에게 여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선우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그보다 더 큰 슬픔이 서연의 눈에서 한 방울 툭 굴러떨어진다.


한 걸음 뒤에서 따라오던 준겸에게 그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서연은 손등으로 얼른 눈물을 훔쳤다. 항상 그랬다. 선우가 사라진 그 날 이후, 서연은 엉엉 크게 소리내어 울어보지도 못하고 줄곧 이렇게 눈물을 속으로 삼켜왔다. 남한테 좀처럼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자신이 대성통곡하는 순간, 선우에게 불행한 일이 닥친 것 같은 슬픈 예감이 기정 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

5년 전 리옹.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에 선우가 있었다. 그는 잠시 성당 안에 멍하니 혼자 서있더니, 나무와 짚으로 만든 옛날식 좌구틀(프랑스어로 'genouiller[즈누이에]'라고 불림)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주님!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제 어머니를 용서하시고 주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소서.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가 저로 인해 너무 오래 아파하지 않도록, 주님! 그녀를 보호해주소서. 제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 그녀를 지킬 수 없었던 저 자신의 죄바카라감으로 매일 너무나 괴롭습니다. 주님, 저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주소서.'


기도를 하는 내내,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선우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언젠가, 서연이도 여기 오면 좋을 텐데...... 함께 올 수 없다 해도, 이런 내 마음을 전할 길이 없다 해도, 서연이가 힘들 때 여기서 울고 더이상은 울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선우가 한국을 떠나고 얼마 후,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김성민 의원! 그는 파리에서 건축 공부와 영화 공부를 시작한 선우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선우 엄마 희재는 아들의 목숨이 위태로울까봐 그의 결정에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정재계 거물 김성민의 혼외자라는 이유로 자신처럼 또 숨어지내야 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으로 하루하루가 너무도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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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통역사, 라디오 방송작가 겸 진행자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어느 날부턴가 나다움을 그려가는 글을 씁니다. 고여있던 슬픔도, 벅차오르는 기쁨도 이제는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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