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평생 모를 줄 알았지
1993년 2월 2일, 춘천 강원 의료원에는 두명의 아이가 울었다. 그중에 한명은 젊은 엄마를 둔 아이였고, 그중에 한명은 나이든 엄마를 둔 아이였다. 그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1993년 2월 2일 우렁찬 목소리로 태어난 아이는 그 누구보다 씩씩하게 인생을 살아왔다.
2024년, 그로부터 31년이 지나서야 탄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태어난 그날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섭고 어려운 일이었다.
난 모른다, 아니. 누구도 모른다. 세상이 조금 좋아져 태어날 당시의 영상을 어떻게든 만날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당시의 엄마의 감정과 상태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얼마전에도 엄마한테 화를 냈다. 바빠 죽겠는데, 이런걸로 전화하면 어떻게 하냐며, 어련히 알아서 하겠다며 전화를 끊으라 했다.
걱정말라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내가 애냐고, 당신 아들이 이제 자식이 둘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치만 난 아직 모른다.
지금 당장 우리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어렵고, 고민이 많다. 잘하는 것인지 내가 행여 잘못한 것은 아닐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귀중한 보물을 잘못 길들이는 것은 아닐지..
이럴때면 종종 생각난다. 내 어린시절 푸근한 할머니의 표정 그 기억 사이, 숨겨든 우리 엄마의 표정들이..
가끔 생각나는 엄마의 표정, 난 몰랐다. 그 표정이 그렇게나 좋은 표정이었는지. 나와 둘이 떠난 여행에서 바베큐가 처음이라며 좋아하던 그 표정에도, 아들이 운전해 데려온 여행이 처음이라며, 힘들지 않냐는 그 표정에도 모두 묻어 있었다.
이제서야 알아가는 것 같은데, 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가려나보다. 내일은 물어봐야겠다.
“엄마, 그때 왜 날 그렇게 봤어?, 내가 그렇게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