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아이에게 안된다고 말했다

자괴감이 날 갉아먹는 날

by하노마

아내가 복직을 하며, 비교적 출근시간이 유동적인 내가 포도의 등원을 맡게 되었다. 이제 한달반즈음 되었지만 여전히 내게 등원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아이에게 화를 내고 어린이집을 들여보낸 날에는 더욱 더..



아침엔 회사 일정이나 포도 컨디션을 봐가며 가급적 조금이라도 더 재우려고 한다. 어차피 나중엔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할텐데, 근심걱정 없을 행복한 지금 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잘 잤으면 하는 마음이다.

포도를 깨워 어린시절 내가 받았던 쭉-쭉 마사지를 종종해준다. 마사지를 마치면 최애 ‘할미곰(이케아에서 할머니가 사준 큰 북극곰의 별명)’을 데리고 ‘무이(물통)’를 챙겨 거실로 나간다. 포도와 함께 아직 잠에서 덜깬 우리집 이오(말티숑)에게 인사하고 아침을 준비한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이제 포도는 혼자 쫑알쫑알 놀줄도 안다. 종종 날 “아빠-”하고 부르긴 하지만 아침을 준비하며 멀리서 대답해주면 되는 정도다. 가리는 음식이 거의 하나도 없고 무엇이든 잘 먹어주는 덕에 난 남들이 먹이느라 한다는 고생을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아침은 늘 간장계란밥이다, 근데 이제 조금의 베리에이션을 곁들인..


아침을 잘 차려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이며 포도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아내는 하원 후에 포도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거니와, 종종 너무 졸려할땐 영상통화를 할 정신이 없을 수 있어 미리 짧게나마 통화를 한다. 아침을 다 먹이고 나면 어푸어푸를 하러 가자고 열심히 꼬셔 세수를 시킨다.

그 다음, 내가 나름 신중하게 고른 톤앤톤 혹은 톤온톤 옷을 입힌다. 피부가 더 마르기 전에 얼른 로션을 발라주고, 입안 세균벌레를 잡는다. 이미 이쯤부터 똘똘이를 보겠다며 노래를 시작하는데 이게 더 심해지기 전 얼른 할일을 다 마치고 똘똘이를 틀어주어야 한다.


포도가 똘똘이에 정신이 팔린 사이, 나는 한평생 해본적 없는 머리 묶기에 정신이 팔린다. 이젠 제법 실력이 늘어 어설프지만 머리를 땋기도 하고, 뿌까머리를 만들기도, 삐삐 머리를 만들기도 한다. 똘똘이 한편이 끝나기 전 잽싸게 머리를 묶어주고 선크림까지 발라야 비로소 등원 준비가 끝난다.


기저귀 여분, 물, 수저세트 등 빠진 준비물은 없는지 한번 더 확인을 마친다. 잘 차려 입은 이쁜 포도와 달리, 정작 나는 아무 옷이나 집어 걸쳐입고 등원을 하러 나선다. 아차차, 양말을 안 신겼다. 부랴부랴 양말을 신기고 외투를 입힌다. 사이좋게 현관으로 나가 포도가 오늘의 신발을 2-3번쯤 바꿔가며 고르고 나면 손을 잡고 등원에 나선다.


다행히 같은 아파트에 어린이집이 있어 등원은 오래걸리지 않는다. 1층을 나와 ’짹짹(하늘을 날아다니는 모든 새를 지칭)‘ 를 불러보기도 하고, ‘마무(나무)‘를 외쳐보기도 한다. 어린이집 앞에 다와서는 하나-둘-셋-넷 해가며 계단을 탈지, 혹은 슈웅~ 하고는 경사로로 올라갈지 고른다. “띵동-” 선생님을 만나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포도의 어린이집 생활이 시작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무척이나 순조로워 보이는 등원 과정이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포도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갑자기 우유를 먹겠다며 떼를 쓰기도 한다. 응아를 했으면서도 닦지 않겠다며 울고 떼쓰고, 겨우 씻기고 나오면 다시 옷을 안입겠다고 버티는 것은 덤...

포도를 겨우겨우 달래 현관으로 나가도, 결국 이런 날엔 신발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다시 떼가 나기 시작한다. 맞지도 않는 신발을 신겠다고 하거나 이 신발 저 신발을 바꿔가며 집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이 나이쯤 된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것 같다. 아니라고 하고 안 입겠다고 하고 안 가겠다고 하고, 우리 포도의 인생에도 “아니”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아니 시기는 사실 별 일이 아니다. 우유를 먹고 싶어하면 조금 줄 수도 있고 정신을 다른데로 돌려 얼른 데리고 나갈수도 있다. 응아를 안 닦겠다고 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물어보며 잠시 기다려줄 수도 있다. 옷을 안입으면 마음에 안드냐고 물어보며 옷장으로 데려가 옷을 고르게 할 수도 있다. 신발도 이 신발, 저 신발 신겨도 주고 맘에 드냐고 물어도 봐가며 신발을 신길수도 있다. “우리 포도가 그랬구나, 다른 신발이 신어보고 싶었구나.” 하고는 넘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아침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거나, 등원하고 돌아와 해야 할 집안일이 너무 많을때면 이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안 씻겠다는 포도에게 “포도 그럼 여기 집에 혼자있을거야?! 호랑이가 와서 잡아가는데도?! 아빠는 그럼 그냥 회사 갈거야!” 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옷을 안입겠다고 해도 ”옷 안입으면 아이 추워해서 감기걸리지! 그럼 아프잖아! 안 입는건 안돼!“ 라며 팔을 잡아 어거지로 옷을 입힌다. 포도가 신발을 고를 새도 없이 신발을 신기고 자기가 못 골랐다며 주저앉아 우는 포도를 들쳐업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아직 떼가 잔뜩 난 포도는 옷을 못 고른, 신발을 못 고른 서러움 만큼이나 엉덩이가 무겁다. 아무리 걷자고 해봐도 주저앉는 우는 아이를 어찌저찌 어린이집에 들여보낸다. 엉엉 우는 아이를 두고 애써 “포도야, 아빠 안녕~해줘야지~” 하면 울면서도 “빠빠이-” 해주는 아이를 보며 돌아서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도 출근을 해야하기에 슬픈 마음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우는 아이를 두고 온, 그 어린 마음에 화를 내버린 나의 모습이 생각나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운전하다가도 ’내가 왜 그랬을까..‘, 일을 하다가도 ‘내가 왜 그랬을까..‘ 밥을 먹다가도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좋은 아빠가 아닌 것 같다..‘ 며 하루종일 자괴감이 날 갉아먹는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미안해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이 덕선이에게 하는 대사를 보며 “너무 슬프다” 했는데.. 막상 내 일이 되어보니 여간 슬픈 대사가 아닌 것 같다. 아직 유치원도 못 보내본 순도 99.9% F 아빠는 벌써 딸아이의 사춘기가, 그리고 먼 미래의 결혼식이 상상만해도 울컥울컥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포도는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연신 “아빠빠빰바빠”를 외치며 날 반겨준다. 이런 날이면 포도를 재우며 괜시리 “아빠가 아침에 화내서 미안해, 포도도 서운했지?? 다음부터는 아빠도 좀 더 기다릴게, 사랑해” 하며 아이의 마음을, 아니 나의 미안한 마음을 애써 추스려 본다


내가 어린시절, 어린이집에 나를 맡기고 가려는 엄마의 머릿끄댕이(Literally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안가!!!”하고 외쳤다고 한다. 그날이 엄마의 마지막 포닥 출근일이었다. 아마도 엄마는 그랬을까, 다시 없을 나의 이별이었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