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내가 튀어 나와 괴로워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물었다.
언제 행복했었냐고.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그럼 언제 기쁨이 자주 있었냐고 물었다.
질문이 바뀌자 몇 가지가 떠올랐다.
과거에 나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사는 아이였다.
미래를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모든 것을 저축하며 살던 아이.
지금은 미래 없이 현재만 산다
(자주 과거에 시달려도) 틀림없이 현재긴 하다.
가장 걱정없이 부족함 없이 행복했던 건,
일을 하다 손발이 잘 맞는 팀원들과 셋이서 쿵짝이 잘 맞게 일하고 최대의 실적을 내고, 동료들 뿐만 아니라 사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또
생존걱정 없이
버스비, 전철료, 유니폼 산 장을 사기 위해
밥을 굶는다던가 하는 계산 없이
처음으로 생존이 아닌 곳에, 의무가 아닌 곳에, 강요가 아닌 곳에
나를 위한 돈을 썼을 때였다.
놀라면서도 얼떨떨하게.
나를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원해서 한 건 아니었다.
옷차림과 화장술이 어떤가에 따라 사람들이 쉽게 나를 다르게 판단한다는 것을 알고 정말 괴로운데(나는 패션에 관심이 없고 쇼핑을 싫어한다) 체형에 맞는 옷, 날씬해보이는 옷, 어른스러워 보이는 옷을 보고 사는 것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었다. (그 때의 나는 이럴 거라면 바카라 한 권을 더 읽겠다! 였으나 실제로 실적이 달라질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먹고 사는데에 지장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싫지만 신경쓰게 되었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했던 의류 쇼핑과는 다르게 다이어트 클리닉은 정말 살을 빼고 싶어 갔었다.
안 해도 먹고 사는데에 아무 지장이 없는 걸 내 의지로 그 정도 금액을 지불해 본 게 처음이었다.
(물론 살을 많이 빼면 먹고 사는데에 지장을 줄 수 있지만, 나는 그 정도로 고도비만이 아니었고,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많이 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먹고 사는데에 지장을 주지 않을 거 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재를 한 것이다)
다이어트 약에, 피부과에, 미용 클리닉에.
그 때 정말 나를 위해 해보는 것에 어리둥절해하며 좋아했었다.
옆에서 누군가는 너무 비싸다며,
옆에서 누군가는 그건 사기라며,
너 미쳤냐고 당장 환불하라고 했던
나를 위해 썼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가 불행한 것들만 있었는 줄 알았는데, 과거에 기쁜 기억도 있었다.
알바비를 떼먹혀 사흘을 굶은적도 있었는데, 나를 위해 거금을 썼던 기억도 있었다.
미래를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현재의 시간을 모두 미래에 저축하며 살던 아이는,
이제 미래 없이 현재만을 산다.
자꾸만 밀려오는 과거에 시달리고있지만서도,
나는 틀림없이 오늘을, 현재를 산다.
자꾸만 통제되지 않는 내가 튀어나와 괴로운 현재 속에서, 선생님이 건넨 질문 덕분에 나는 나를 위해 거금을 썼던 기억을 겨우 떠올렸을 뿐이다.
과거가 온통 불행으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다는 사실
나를 위해 기꺼이 어리둥절해하던 내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기억.
그 뿐이었다.
덧)
저 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해서 이 우울증 수기를 연재하려 온라인카지노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휴재 말고) 제가 늘 업로드를 하던 "월요일 저녁 즈음"이라는 약속을 처음으로 어겼어요.
혹시 그 시간에 기다리셨던 분이 계셨을까, 궁금합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