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우울] 특별편 - 이유진,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서평
[우아한 우울] 특별편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쓰는, 서평이라기엔 누추한 소감문.
당신께서 연고(緣故)를 붙들어가는 여정에 동행했던 표식
아직 당신의 무거운 마음에 부담되지 않을, 가루처럼 가벼운 연고(軟膏)가 되길 바라며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는
이유진 봄해 작가님이 연재하실 때 한 편 한 편 읽었던 작품입니다.
시작되는 상황에서의 부친에 대한 화자의 감정이 궁금해서 글을 읽게 됐는데,
드라마로 따지면 실시간을 달린 셈이네요.
바카라을 주문해서 받아들곤 펼치며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습니다. 연재 당시보다 문장도, 문단도 미세하게 단정해져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더 매끄러워져 있었고, 조금 더 친절해져 있었어요.
소제목들은 가로등 같아서 머릿속에 장면들이 잘 그려지더라고요.
바카라 내용은 화자가 자신만의 연고를 찾는 내용입니다.
시신 인수로 시작된 이야기. 초반의 화자는 자꾸 과거의 감정에 역류당합니다. 그러다 자신의 의지로 과거로 역순행하고 역순행하고, 끝 없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완전한 현재에 도착합니다.
아버지를 괴롭히던, 수 없이 날아오는 칼날들을 종이 한 장의 방패로 막아내던 화자는, 여전히 종이 한 장 만을 방패삼아 민원인들을 대하며 살고 있어요.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호스를 잡고 사람을 구해내던 화자의 손은 독거노인의 허리춤 밑을 더듬으며 생사를 확인 하기도 하고, 보호자 서명을 하기도 하고, 난산으로 수혈줄을 달아놓은 아내의 손을 받쳐놓기도 했으며, 탯줄을 잘라 생명의 숨을 트이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화자의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화자에게 연고를 만들어 왔습니다.
아내는 기다림을 붙드는 것으로 화자의 연고를 만들어 왔고, 어머니는 청력을 붙들려는 것으로 화자와의 연고를 지켜왔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기계와는 다르게 보청기는 소리를 증폭시키는 형태라, 착용하려면 청능훈련을 꾸준히 해야합니다). 화자의 소리를 붙들기 위해 어머니는 자신의 소리를 붙들려 노력하셨을테니까요. 그리고 봄의 들과 해, 아이들은 아빠를 붙드는 것으로.
호스를 잡고, 종이 한 장을 방패로 삼아 몸을 낮추고 주로 웅크리던 화자는 끝끝내 연고를 붙들어 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아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개인적으로는 끝을 석 장 남겨놓은 그 대목에서 한참 서 있었던 것 같아요.
화자가 왜 소방관인지 백 번이고 알 것 같게 해 준 대목 같았달까요.
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열 일곱살때 첫 소설을 썼어요.
제가 '만든' 이야기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게 그 때부터 꿈이에요.
아직 저는 제가 만든 허구로 세상을 감동시키는 작가가 되진 못했으나, 하나는 압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허구는 진짜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의 우울증에는 부친의 지분이 많아요.
앓은 나날이 오래되면서 부친에 대한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고,
저는 겨우 자식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만 하며 살고 있어요.
나라는 사람은 지워둔 채로요.
하지만 이 마음은 여전히 제 마음에 퇴적층처럼 쌓여있을 뿐입니다.
아직 입 밖으로 꺼낼 정도는 아니에요. 저는.
그 때 봄해님의 글을 만났습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 저는,
그 때에 비해 아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저 슬롯인으로 조금 더 기능하기 쉬워졌고,
그저 정상인처럼, 아무 문제 없는 듯 대응 할 수 있게 됐으며
그저 죽고 싶었으나, 그렇진 않은 정도.
그저 살고 싶진 않으나 숨이 붙어 있으니 살아있어서 사는
이 정도.
그래도 이 만큼까지 오게 된데 까지는 이 바카라이 보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완전한 현재에 도착한 화자와 달리 저는 여전히 과거의 퇴적층에 묶여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봄해 작가님의 적지않은 마음을 담은 이 이야기에 조금의 온기를 얻었던 것은 자명합니다.
서평은 많이 쓰는 편이 아니지만,
그 빚이 좀 있는 이유로 쓰게 됐어요.
이유진 봄해 작가님은, "계단참"을 언급하며 "늦게 마련된 빈소"에 찾아와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이야기 끝의 [작가의 말]의 끝을 맺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맺고싶어요.
아버지로부터 비롯됐을 성씨도 떼고, 아이들의 태명과 이름에서 비롯된 듯한 봄해도 떼고,
오로지 오롯하게 '유진'이라는,
또렷한 당신의 앞으로를 응원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