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혼돈의 카오스

by는개


처음에 내가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받았던 진단명은 '불안성 우울장애'였다.


[심리학적 평가 보고서]는,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먹는 약은 늘어만 가는데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받아 든 결과지였다. 의사 선생님이 그 심리학적 평가 보고서를 앞에 두고 내게 설명을 해주긴 했다. 분명 선생님의 입은 움직였고, 내 귀에 목소리는 들렸다.


하지만 닿아온 건 없었다.










정신과 약은 자신에게 맞는 약과 적정 용량이 중요하다, 고 한다.

그 말인 즉슨 그렇다는 게 결국 내 몸에 대고 알아봐야 한다는 얘기고 결국은 먹어보고 내 몸에 실험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거 였다.


약을 바꿀 때마다 살이 너무 찌거나 온몸이 붓는 부작용을 견뎌야 했다.

(진단을 받았을 때에 비하면 10kg이 쪄 있다)


숨이 막힐 때 먹으라고 준 불안 상비약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약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더 미치도록 불안하게 만들었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비참해서, 나는 다시 우울의 늪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 나날들을 의사에게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건 언제나 기계적인 처방과 새로운 약의 추가뿐이었다.


늘어만 가는 약봉지의 두께만큼

내 무기력의 두께도 두꺼워졌다.


그 고통의 끝에서 마주한 보고서를 가만히 보던 의사는 자극과 불안이 같이 높기가 쉽지 않은 특이한 경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보통은 이렇게 나오지 않는다고, 참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1순위가 우울이니 그것만 잡으면 된다는 말뿐.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이게 무슨 뜻인데...?, 하는 생각만 맴돌았다. 혹시 이 보고서를 작성한 심리상담사가 따로 해석을 해주는 건가 싶어 물어봤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결국 나는 그 무거운 결과지를 들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기댈 곳은 검색창뿐이었다. 외계어 같은 증상들을 하나하나 검색창에 쳐보면서 어떻게든 나를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낯선 질병명들이 쏟아졌다. 성인 ADHD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있길래 나는 아예 다른 질병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며 나무위키의 해당 문서만 열 번은 넘게 읽었던 것 같다.


과거의 도드라진 상처들은 모조리 경계선 성격장애와 ADHD의 증상이라 부르고,

지금 심해(라고 명명한 이 상태)에서, 나름대로 우울하지만 우아하게 살고 있는 이 평온함조차

고작 약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대체 뭘까.



의사가 말하는 치료와

내가 바라는 나아짐의 경계가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다른 의사를 찾아봐야겠다는 결론에 닿았지만,

이내 지독한 귀찮음과 무력감이 나를 집어삼켰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의사를 바꾼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을까.


그 뒤로 다른 병원을 알아보겠다는 그 평범한 말을 배우자에게 꺼내기까지 몇 주의 시간이 걸렸다. 그 몇 주 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힘들어서 뇌가 기억을 지워버린 걸까. 그저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어떤 서사도 만들지 못한 채 그 몇 주를 완전히 멍하게 흘려보냈다는 사실만 어렴풋할 뿐이다.


그 긴 침묵의 끝에서야,

나는 겨우 다른 병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화요일 연재
이전 15화증상으로 번역된 기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