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니체 120일 차 - 잉태의 조짐?

<뜻에 반하는 복에 대하여 1>

byHomo ludens

[고독, 오후 그리고 창조]

차라투스트라는 "행복의 섬"과 벗들을 떠나 바다를 건넌 지 나흘째, "곡두와 수수께끼"에서 마주했던 영원회귀의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자신의 운명 위에 굳건히 섭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나 다시 혼자이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홀로 맑은 하늘과 확 트인 바다와 더불어. 내 주위는 다시 오후다. 내 일찍이 벗들을 처음 만난 것도 어느 오후였고 또다시 만난 것도 어느 오후였다. 모든 빛이 서서히 침묵 속으로 가라앉던 그런 시간 말이다.

군중에서 벗어난 차라투스트라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하여 회복하고자 합니다. 그에게 고독은 단순히 타인으로부터 소외된 외로움이 아닌, 타인의 가치관을 벗어나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정신적 자유의 공간입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벗을 만나는 시기는 오후입니다. 오후는 정오가 지난 시간, 즉 위버멘쉬의 시간 이후를 의미합니다. 그림자가 없는 정오의 시간, 즉 정점에서 하강하는 시점은 빛이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시간입니다. 진정한 벗은 먼저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습니다.

창조하는 자가 일찍이 길동무와 자신의 희망을 이룰 아이들을 찾아 나선 일이 있다. 그런데 보라, 그 자신이 먼저 저들을 창조하지 않고는 저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의 사유와 이상을 함께 나눌 동반자와 자신의 의지를 이어나갈 미래를 갈구합니다. 따라서 친구를 사귀고, 아이를 낳아 그 의지를 이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은 '발견'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희망을 이룰 아이들"은 원어로 "Kinder seiner Hoffnung", 즉 "자신의 희망의 아이들"입니다. 차라투스트라에게 동반자와 아이는 반드시 타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사상이나 저작 등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타인의 글과 생각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여 벗으로 삼고, 자신의 아이와 같은 저작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와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위대한 사랑이 있는 그곳에서 그것은 잉태의 조짐이 된다. 나 그렇게 터득했노라.

결국 인간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와 땀이 서린 구체적인 창조물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헌신을 통해 싹트게 됩니다. 모든 창조와 진정한 독립의 원동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위대한 사랑', 즉 '자기애(Selbstliebe)'입니다. 자신의 삶과 운명을 긍정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일구어내려는 실존적인 힘을 가진 사람만이 새로운 가치를 잉태한다는 것이 차라투스트라가 고독 속에서 도달한 궁극의 지혜입니다.


Gustav_Klimt_-_Hope,_II_-_Google_Art_Project.jpg<희망 II>, 구스타프 클림트, 1907-08

구스타프 클림트의 걸작 <희망 II>의 화폭 속에서 깊은 고독과 자기애의 절정이 묵묵히 형상을 얻는다. 그림 속 주인공인 만삭의 여인은 외부의 시선이나 군중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채, 깊고 고요한 내면의 세계로 침잠해 있다. 그녀의 머리 위를 감싸는 화려하고 엄숙한 문양의 베일과 어두운 배경은, 세상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오직 자신만의 오롯한 고독 속에 머무는 차라투스트라의 '오후'를 닮아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의 시선이다. 여인은 세상을 향해 구원을 갈구하거나 타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안에 잉태된 생명—즉 ‘자신의 희망을 이룰 아이’—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깊은 응시를 건네고 있다. 그녀의 배에 그려진 어린 생명의 얼굴은 그녀 자신의 형상과 겹쳐지며, 진정한 창조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진실을 무언으로 증명한다.


결국 클림트가 포착한 '희망'이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보편적 도덕의 궤도를 벗어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자신의 과업과 존재를 향해 온전한 바카라임을 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위대한 사랑(Selbstliebe)' 그 자체다. 모든 빛이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오후의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낳고 또다시 자신의 아이를 잉태하는 자만이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영원한 창조의 성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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