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되기 전에는 내가 맡았던 업무의 바카라임은 당연히 내 것이었지만, 같은 조직에 있는 다른 동료의 일은 그렇지 않았다. 냉정하게 보면 그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몰라도 괜찮았다. 내게 주어진 미션을 충실하게 하는 것도 쉽지 마당에, 다른 사람 일을 속속들이 알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알면 좋지만, 나도 동료의 한 사람으로서 아이디어를 더할 수는 있지만 깊숙이 관여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할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상사는 소위 ‘역할과 바카라임’이라고 불리는 R&R에 대해 선 긋기를 하지 말 것을 늘 강조했기에 그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마음속 한편엔 희미한 선이 남아 있었다.
어느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건 그만큼 바카라임질 일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같은 팀에 있는 동료들의 모든 일이 전부 내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내가 상사의 입장이 되어 보니 비로소 ‘선 긋기’가 왜 좋지 않은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A가 맡은 일, B가 처리할 일은 A, B 나눠서 각각 하게 되지만 결국 조직의 공동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함께 만들어 가는 목표 달성에 내 일, 네 일을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리더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다).
또 하나 생긴 고민은 그런 개별적인 업무들의 완성도를 어디까지 개인들에게 맡길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팀이 꾸려지면서 기존 멤버들은 전부 원래 조직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의 경우 회사 내 경력이야 다들 10년 이상이지만, 주로 연구개발 경험이 많고 기획과 전략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미 이 조직은 3년 차에 들어섰기 때문에 아무리 각 멤버의 실제 경험은 적다 한들, 퍼포먼스는 3년 차 이상에 맞는 기대와 눈높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갑자기 주어진 숙제 - 특정 기술에 대한 전략 방안 마련 - 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메일 수신자가 ‘나’로 되어 있는 과업은 내가 끝내는 일이었다. 이제는 내가 수신하는 메일의 숙제가 단순하게 ‘당신이 해결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안다. 팀에서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다. 나 역시 처리할 일들이 많다 보니 직접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적 문제다. 자연스럽게 팀원들에게 일을 나눠주고 언제까지 마무리를 하자는 일정과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종류의 일에 능숙하지 않은 담당자들 역량을 고려하여 함께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그들에게 맡기는’ 시간을 부여했다.
잘 해오려나?
마음속으로 걱정과 기대를 안고 며칠을 보낸 뒤 다시 만났을 때, 내 기준에선 다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초안의 뼈대는 이미 지난번 미팅의 것이었고 그 사이 뭔가 발전된 방안이 전혀 없었다. 현업 부서와 소통해서 현황을 알아온 것이 있었지만 ‘안되고 어려운 상황’만 늘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아직 시간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아이디어를 내서 정리할 것을 제안했고, 얼추 마련된 내용들을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어 숙제의 마감 시한에 대응할 수 있었다(간단하게 썼지만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 나의 고민은 언제까지, 어느 수준까지 그들에게 일을 주고 기다릴 것인가이다. 정해진 기한 내에 꽤 괜찮은 수준의 완성도를 가진 결과물을 내야 한다. 팀원들에게는 성장할 시간과 기회를 줘야 한다. 나는 그들을 잘 트레이닝시켜서 (척하면 척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니, 기대보다 그렇게 해야할 바카라임과 의무가 있다.
동료 팀장에게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의 조언은 이렇다. 정말로 단련시키고 싶다면, 보고를 해야 하는 최종 순간의 바로 직전까지는 담당이 완성도 있게 일을 가져올 것을 주문하는 것이 필요하단다. 팀장 눈에 성이 차지 않는다고 중간에 ‘내가 나서서 하고 말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또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아주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결국 이번 일은 중간 즈음에 내가 개입해서 대폭 내용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고민했다. 그들에게 일을 맡겨야 하는데, 내가 계속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 별로 시간이 없네? 임원들 눈높이에서 보고 싶은 내용이 대체 뭘까? 이런 고민의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앞섰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지속가능한 조직의 모습이 될 수 없기에 다음엔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