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편함, 누군가의 이유

bynay

얼마 전 같이 일하는 동료가 외부 회사와 용역 계약을 하나 맺었다. 이미 14-15년 정도 경력이 있는 친구인데, 회 생활 중 처음으로 이런 계약을 맺는 경험을 해보게 된 것이다.


‘처음 하는 일에는 누구나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 회사에서 경력이 오래 쌓였다고 해도, 계약 같은 건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단계가 겹겹이라 더 바보가 되기 쉽다. 익숙하지 않은 성격의 서류들, 때로는 불필요해 보일 정도로 복잡한 검토 과정, 여러 부서를 거치는 협의 단계, 승인을 위한 최종 품의까지 말이다. 계약 업무는 자주 하는 일상이 아니다 보니, 한두 번 해봤어도 시간이 지나 다시 하려면 낯선 일로 다가온다.


초심자 눈에 무릇 부당해 보이는 단계와 절차가 눈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거 너무 복잡한 거 아니냐, 이게 최선이냐와 같이 볼멘소리를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였던 내 경험을 떠올려 보면, 어떤 지점에서 열받고 불합리 또는 비합리적이라고 느꼈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도 영 이상해 보이는 요구 서류와 양식의 번거로움은 이해가 잘 안되는 편이다.


그동안 어쩌다 보니 하는 일의 성격과 커리어 때문에 동료보다는 많은 횟수의 외부 계약을 맺어본 입장에서, 나는 그에게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의 방식으로 완성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연구비 지급을 위해 계좌 증빙을 받아서 첨부했는데, 왜 품의 서류엔 계좌 번호를 비롯한 정보를 다시 입력해야 하는가? 번거롭다! 중복된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그건 그저 증빙일 뿐이고, 승인된 품의를 보는 사람은 당신이 직접 입력한 본문 내용을 참고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처리하는 사람의 편의를 위한, 행정주의적 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담당부서 입장에선 내 서류 하나가 아니라 여러 부서에서 날아오는 복수의 품의를 검토해야 하니, 첨부된 증빙 자료를 하나씩 열어서 직접 처리하기엔 번거로운 과정이 된다. 각 부서의 업무 관점이 반영되어 정리되고 정리되어서 현재와 같은 프로세스가 확립된 것이다.


처음 해보는 과정과 경험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보는 시각이 또 전부는 아니다. 물론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꾸는 것이 맞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잘 안된다는 이유로 체념하듯 제도와 규정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원래 그런거야~라며 넘어가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다만 내가 힘들고 번거로웠음을 표현하는 데서 멈추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여러 부서의 고충을 헤아려보는 관점도 가져보면 어떨까. 나름의 규칙이 만들어질 때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적절한 대안을 마련해 제안하기를 바란다. 그저 자리에 앉아 이거 고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문제 제기는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 낼 수는 있을지언정, 실제 불합리한 현실을 정말로 바꿔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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