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인가요? 예/아니오
위 문항은 동료 리뷰라고 불리는 항목에 버젓이 들어가 있는 질문이다. 예/아니오 중 반드시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선택 안 하겠음이라던가 모르겠음 같은 답변은 불가능하다.
그가 나에게 자신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을 때, 난 냉정하게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음’의 의사를 (몰래) 전달하였다. ‘몰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작 본인은 볼 수 없고 상사만 보는 내용이기에 그랬다. 아마 본인에게 직접 노출되는 것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일이다. 제한적으로 보인다는 장치를 걸어두면 사람은 불필요할 만큼 솔직해질 수 있다.
누구나 일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고, 일을 대하는 태도나 역량이 다르다. 그런 까닭에 동일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는 그와 일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쉬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흔히 ‘사바사(사람 by 사람)’으로 불리는 이 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나도 어떤 사람에겐 최고의 동료이지만 어디에서는 다시는 상종 못할 무능력자일 수 있다. 자못 공정한 게임의 룰처럼 보이면서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솔직함을 표시할 수 있는 기회를 ‘택하는 사람’과 그래도 그렇지라는 마음으로 솔직함을 ‘택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공정한 규칙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다. 여하튼 상사가 보게 될 평가서에 ‘나는 이 사람과 다음에는 가급적 같이 일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건 그만한 명분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에겐 그렇게 평가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놀랍게도 다음 해가 되어 그의 변화를 보았다. 변화의 이유가 내 평가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인지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과 시간이 지나고 보니 괜한 평가 의견을 냈다는 자바카라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상사에게 적나라하게 보일 결과에 대해 어떻게 보면 바카라임지기 어려운 행동을 한 셈이니까. 나는 그 동료를 대할 때마다 어딘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여러 문항 중에서 특히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의 결과가 개인 평가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의 포함 여부를 여러모로 검토했을 인사 부서의 고민과 이유를 잘 알겠으면서도, 나는 과연 동료 평가를 활용하는 시스템이 긍정적인 의도로 작동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사람이 희망퇴직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더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직접적인 퇴사의 이유를 묻지 않았다. 수십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내 평가 때문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지만 끝내 확인할 바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사에게만 공유되는 내용이라 해도 상사가 무심결에 ‘너랑 다른 사람이 같이 일하기 싫데’라고 말한 건 아닐지, 그래서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상처가 점점 커져서 회사를 떠나리라는 마음을 갖게 된 것 아니었을까. 마치 영화 <인셉션>에서 작은 장치를 마음속에 하나 심어두면, 그 의심과 분노가 조금씩 자라 한 사람의 의식 전체를 장악하게 한 결과로 이어지듯 말이다. 확인되지 않은 조각들을 모아서 맘대로 소설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뭔가 그에게 부채 의식을 가진 것만큼은 사실이라 하겠다.
예전엔 동료가 본인의 피드백을 요청하면 정직하게 알려주는 것이 상대방의 성장을 위해, 조직의 건강한 문화를 위해 필요한 용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퇴사를 바라보며 어쩐지 소심해진 마음에 평가의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자기반성적 피드백을 갖게 되었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상대에 대한 의견을 적으라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될 씨앗의 잉태라면 어쩐지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