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bynay

1. 회의 중

업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말 중 하나는 어쩌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일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든 듣는 사람이든 어느 한쪽이 오해를 하는 경우다. 회사에선 항상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이란 단순히 대화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이 될 수 있도록 각자의 입장을 잘 설명, 필요에 따라서는 설득하고 현실적으로 실현되도록 생각을 나누고 발전시키라는 의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 회사에서 소통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정의해 준 적은 없다.


그래서일까? 소통이 중요하다는 강조가 무색하게 그것의 오류는 지나치게 빈번하다. 여러 회의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많아져 사람들의 말하는 모습과 내용을 관찰할 기회가 자주 생겼다. 박학다식하여 어떤 질문에도 알고 있는 것을 막 내놓을 수 있는 사람, 한참을 듣고 있다가 비로소 자기 생각을 꺼내놓는 사람,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서 내 말이 옳다고만 주장하는 사람 등 성격도 다양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논리적이면서도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처음 들으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라는 질문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나는 그들이 간단한 얘기도 일부러 모호하게 돌려서 말하고 싶은 건 아니라는 의도를 알고 있다.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쓰는데도 한참 걸린다. 게다가 시간과 공을 들여야 논리의 흐름을 제대로 잡힌다. 그러나 회의 자리에선 자신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단편적인 얘기들을 지금 당장 이 현장에서 쏟아내는 탓에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덧붙여 각종 대명사(예. 그거를 이렇게해서 저런 방식으로 풀어 봐)들이 혼재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소통의 어떤 방식‘을 피할 수 없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니 듣는 입장에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명확하게 해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응이 시작된다. 대부분 ’그러니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이거란 거죠?’ 라는 확인(rephrasing)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질문을 듣고 잠시 시간을 달라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듣는 사람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상대가 말하고 있을 때 어떤 대답을 해야하는지 빠르게 머리 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즉, 경청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나의 생각을 덧붙이거나 맞받아치기 일쑤다. 상대 발언에 물러서지 않겠다거나 지지 않는다는 의지가 드러나는게 느껴진다.


2. 회의 끝에

본질적으로는 말싸움에 가깝지만 회의라는 형식을 빌린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적절한 옷을 입혀 하고 싶은 말을 주고받는 시간이 끝난다. 그러면 기록을 남기기 위해 회의록이라는 걸 쓴다. 무엇을 얘기했는지도 중요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도 중요하다. 그런 내용들은 차분히, 제대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이때 회의록을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곤란할 때가 많다.


회의록을 정리하는 사람마저 앞선 발언자들의 말 그 자체가 대체 무슨 뜻이었는지에 대한 해석이 다를뿐더러, 발언자의 직급과 직위에 따른 중요도의 가중치까지 적절히 반영해서 남겨둘 것과 뺄 것을 구분지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법정의 속기사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하는 것이 회사 회의록의 정체성은 아니다. 앞뒤 다 자르고 맥락 없는 정리도 불가하다. 그렇다고 일일이 찾아가 그때 이 얘기하신 거 맞죠?라고 확인할 수도 없다. 때로는 발언자가 잘 모르고 던지는 질문이나 단편적인 의견은 적절히 무시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회의록 정리도 일종의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예전엔 한 땀 한 땀 회의 석상의 이야기들을 다 받아 적고 정리했어야 했다. 회의실 어느 한 곳에선 늘 쉴 새 없이 타닥 거리는 타이핑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세상이 좋아져서 이젠 동의 하에 녹음을 한다. 그리고 이걸 자동으로 스크립트로 변환하고, 그걸 생성형 AI에 던져주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뭘 하기로 했는지,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 친절하게 다 정리해 준다.


3. 여전히 남은 건

그러나 아무리 봐도 별 중요하지도 않았던 것마저 시시콜콜 다 긁어모아 정리해 준 이 녀석의 성능이 영 마뜩잖게 느껴지는 건, 회의 내용 중에 담긴 뉘앙스를 전혀 캐치하지 못한 탓이다. 녹음과 AI 회의록 요약 이전에도 이런 현상은 늘 있었다. 다 받아 적는 게 능사는 아니란 말이다. 발언자의 말에서 중요도를 찾아내고, 꼭 필요한 부분에 별표 붙이는 작업은 회의록 정리 담당자의 ‘해석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최근 있었던 어떤 회의록은, 너무 깔끔했지만 대체 무슨 말인지 전혀 의미 전달이 안되었다. 나는 원래 발언자의 스크립트를 다시 읽고, 원문을 가져와 중간중간 대명사로 지칭된 ‘그것’들에 대해 ‘역자 주’까지 붙여가며 의미를 다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AI의 성능이 뛰어나다한들, ’아니 근데 내 말의 뜻은 그게 아니라’를 알아채는 건 아마도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 만약 생성형 AI가 발언자의 평소 관심이나 말하는 태도, 의견 전달의 방식마저 꿰차고 있다면 훨씬 정교한 회의록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또는 말하는 사람의 직급 정보와 부서의 특징, 최근 경영진의 정보 같은 것까지 사전에 반영된다면.. 어쩌면 정말 제대로 의미를 짚은 회의록을 제공할지 모르겠다. 아직 그럴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해 전달하고,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라는 말은, 우리가 아직 그 과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가장 솔직한 증거다. 그동안 나는 뉘앙스와 숨은 의미까지 찾아내는 인간의 고맥락 인지 능력을 조금 더 사용할 수 있는 기간만큼, 내 일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이걸 왜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