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헤어진 러너가 다시 달리게 된 이야기
돈 한 푼 없는 샌프란 한인 러닝 커뮤니티 SFKR의 유일한 자산은 사람이다. 그래서 매년 위태롭다. 사람은 풀마라톤, 아니 울트라마톤에도 도전할 수 있는 존재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귀찮을 수도 있는 존재니까. 커뮤니티가 돌아가려면 돈과 시스템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사람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인지, 매년 SFKR에는 배트맨 같은 러너가 등장했다. 올해도 서너 명의 배트맨들이 SFKR을 구했다. W는 배트맨이다. 그리고 W는 일, 승진, AI 따위의 포로가 된 나도 건져올렸다. 이 글은 W에게 보내는 땡큐 레터다.
(W의 바이브)
포로가 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올해 초 본업에 번지 점프를 했다. 뛰어든 것은 좋았다. 하지만 고무 밧줄을 몸에 달지 않고 점프한 것이 문제였다. 반등이 없었다. 일, 일, 일, 일, 일, 또 일, 하루 쉬고, 다시 일, 레츠고가 일상인 상태까지 고속으로 추락했다.
생각은 단순해졌다. 해야 할 일, 미룬 일, 해결하지 못한 일에 대해 늘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불안했다. 머리 위를 빙빙 도는 독수리 떼가 내 머리통을 언제든 낚아챌 것 같은 느낌이랄까. 모니터 앞에 앉아야 덜 불안했다. 일이 곧 삶 그 자체인 루틴은 바라던 바였다. 그러나 해보기 전에 바라던 것을, 해보고 나서도 바라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 와중에 달리고, 읽고, 쓰고, 누군가를 만나는 등, 뭔가에 애쓰고 싶은 마음은 곱게 빻은 가루처럼 부서졌다. 그 기둥 같은 마음들을 일부러 부시고 쪼개고 빻은 건 아니었다. 일에 서너 번 밀려나서 그런가. 일에 기를 다 써서 그런가. 공들이는 것 없이 무작정 AI에게 닥치는 대로 너무 오래 시켜서 그런가. 하여간 달리고, 읽고, 쓰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들도 고무 밧줄을 떼고 번지 점프를 했다. 그냥 편히 쉬고 싶었다. 쇼츠나 보고 싶었다. 돈 주고 호캉스나 떠나고 싶었다. 손쉬운 걸 단순히 소비하고 싶었다.
달리기를 멈추고 나니 매주 나갔던 SFKR 커뮤니티도 참 멀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일요일 정기런에 나가려면 의지가 필요했다. 의지는 점프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안 나갔다. 같이 달린 덕분에 좁혀진 친구들과의 거리도 벌어졌다. 같이 달리지 않는다고 친구가 아닌 게 아닌데도, 마음은 계속 낙하를 했다.
그 일 지옥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건져올린 게 W다. W 덕분에 8월, 9월 두 달 꽤 부지런히 달렸다. 반으로 접혀 있던 폐를 약간은 폈다. 도파민에 절은 뇌를 부지런히 빨래했다. 이제는 누가 스트라바에서 뛴 걸 보고, 아 나도 뛰고 싶다고 느낀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자주 뛰러나갔다. 하프 마라톤도 W랑 두 번이나 달렸다.
한 삼주 전, 대회에 임하는 각오로 달린 하프 마라톤에서는 뛰기 전 날부터 두려웠고, 출발선에 도착해서는 설렜고, 달리는 내내 힘들었고, 목표했던 페이스의 기록이 결국 가민 와치에 찍혔을 때는 짜릿했다. W를 포함한 러닝 친구들의 캐리 덕분이었다. 그날 올해의 배트맨들이 대거 출동했다.
W에게 약간은 미안하다. 톡 쏘는 글을 적기 위해 한참 생각해 봤는데도, W에게서 받은 드라마틱한 도움은 없었다. 아. W에게서 가민 와치를 선물 받긴 했다. W가 호스트한 호화스러운 야구장 스위트 파티에 가서 오랜만에 SFKR 친구들과 놀기도 했다. 솔직히 좋았다. 러닝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호가 천 만원이 넘는 스위트에 간 것도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무엇보다, 올해 내게 W는 소리 없는 함성을 크게 발사한 인플루언서였던 것 같다. W가 낙하하던 나와는 반대의 궤적을 그리는 걸 나는 올해 내내 팔로우했다. 그는 ‘컴온!’, ‘레츠고!’를 남발하며 쉽게 남의 마음에 불질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꾸준하게 보여줬다.
W는 스토브 위에 점화한 푸른 불꽃같았다. 팔로워인 나를 뭉근하게 데폈다. 매주 SFKR 정기런에서 달리고. 밤 늦게도 달리고. 길게도 달리고. 질주도 하고. 쫌쫌따리 보폭으로도 달리고. 한국에서도 달리고. 돌아와서도 달리고. 달리며 찍은 사진과 영상을 숏츠로도 편집해 올리고. 한 6개월 넘게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러닝을 뛰고 또 뛰는 걸 보았다. 그걸 계속 보다가 결국 나도 다시 달리고 싶어졌던 것 같다. 이 꾸준한 보여줌이 올해 W가 나를 건져 올린 방법이었다.
W와 나는 오늘로부터 딱 1년 전, 금문교를 넘어 (샌프란 윗 동네) 소살리토까지 달리는 SFKR 특별런에서 만났다. 그날 우리가 처음 만났다는 사실은 최근 그에게 듣고 알았다. 그는 우리가 처음같이 뛴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W가 모임에 처음 온 날이었다. 갈까 말까 하다 나간 그 첫날이 참 좋아서 SFKR에 매주 나오게 됐다고, 그가 말했다.
난 사실 그날 W와 나눈 대화는 전부 까먹었다. 하지만 앞으로 쉽게 까먹지 않을 생각들은 이것이다. 달리기라는 고무 밧줄을 떼고 본업에 번지 점프하지는 말자. 번지 없이 낙하를 시작했다면 굿럭. 그런 점에서 올해 W가 내 근처에 있었던 것은 작지 않은 행운이었다. 야호~! 그의 숏츠에서 배운 유행어다. 뭔 뜻인 지는 잘 모르겠다. 끝없이 낙하하다가 비로소 반등할 때 외치기 좋은 말 같다. 결국 다시 올라오게 도와준 W에게 한 마디 더.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