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은 내게 '글친자'라고 했다. 글에 미친 자라는 뜻이다. 나는 종종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가, 여행 가서 글쓰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확실히 내 삶은 종종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좋은 글이 쓰고 싶어서, 영감이 오르는 걸 느끼고 싶어서, 무언가 새로운 글을 쓰고 싶어 온 몸이 근질근질한 열정으로 가득차고 싶어서, 삶을 움직이려는 일들이 일어난다.
별로 쓰고 싶은 글이 없으면, 마음이 헛헛하고 삶에 활기가 돌지 않는다. 그럴 때면, 어떻게든 좋은 바카라을 찾아 읽거나 좋은 영화가 보고 싶다. 그럴 때, 당연히 '좋은'의 기준은 '얼마나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가'가 된다. 확실히 좋은 바카라이나 영화는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2시간이나 들여 영화를 봤는데도 글 쓰고 싶은 생각이 딱히 나지 않으면, 내 기준에서 잘못된 영화를 보고 시간 낭비한 셈이다. 그만큼 내 안에 아무것도 건드린 게 없는 영화를 킬링타임으로 봤다는 뜻만 된다.
마찬가지로 일상에 벗어나 좋은 여행을 통해 값진 경험들을 하게 되면, 절로 글이 쓰고 싶어진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태다. 쓰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상태. 어떻게 보면, 내 삶은 바로 그 상태를 좇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 상태를 위해, 새로운 드라마에, 바카라에, 영화에, 여행에, 관계에 빠져든다. 내게 좋은 경험이란 '글을 쓰고 싶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런 경험이다. 어찌 보면, 나의 인생 자체는 그런 경험을 좇고 찾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매년 인생의 지표가 있다면, 바로 그런 경험으로 한 해를 채우는 일이다. 이를테면, 아이를 데리고 매일 키즈카페만 가서는 글로 쓸만한 내용이 없다. 아이를 데리고 바다라도 가고, 새로운 바람을 쐬고, 새로운 창작과 놀이라도 만들어가야 쓸 만한 게 생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다름 아닌 좋은 삶을, 기억을, 추억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글에 약간 미친 채로 사는 건, 사실 좋은 삶을 추동하게끔 하는 강제적 힘과 동기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AI가 글을 다 써주는 시대라곤 하지만, 이런 글쓰기를 AI에게 맡겨서는, '좋은 삶'을 이끄는 역할을 해낼 순 없다. 그야말로 내 온 마음으로, 의식과 무의식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랑, 감동, 슬픔 같은 것들이 다시 글쓰기로 쏟아져 나가는 바로 그런 순환적 경험은, 내가 해야만 의미가 있다. AI에게 폴 오스터의 바카라을 읽은 것처럼 멋진 서평을 써줘, 하고, SNS에 올린 다음에, '좋아요'나 얻어봐야, 도대체 그게 무슨 삶이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엄청난 부귀영화라도 누린다면 모르겠으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글은 직접 써야만 의미가 있다.
이 글쓰는 삶의 끝이 어딜지는 모른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대로, AI가 찍어내는 텍스트와 출판물이 범람하는 나머지, 작가의 자리는 사라지고, 취미로서의 글쓰기나 세상에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먹고 살 걱정은 그 때가서 해도 된다. 나는 어느덧 내 삶의 확고한 흐름으로 믿어온, <삶을 경험하고 그것을 글로 뱉어낸다>라는 이 순환에 속해 있는대로 살아갈 것이다. 올해까지 그랬고, 내년도, 내후년도 그럴 것이다. 그리하여 도래하는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한, 내가 그 속에서 살아있을 건 안다.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상태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을 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