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했다고 꼭 오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겼습니다.
내부 인원으로 필요한 포지션을 대부분 채웠는데, 주니어 기획자 딱 한자리가 비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채용을 해야겠습니다.
내부 결재가 끝난 다음에야 채용 공고를 작성합니다.
그러려면 기획팀과 회의를 해야 합니다. 주요 업무를 정하고, 자격요건을 정리하고, 우대사항을 협의합니다. 그렇게 몇 번의 검토를 거쳐 공고가 올라갑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 한 분이 있습니다.
채용 공고를 보다가 주니어 기획자 공고를 발견합니다. 주요 업무와 자격요건, 우대사항을 살피고 회사에 대한 정보도 찾아봅니다.
그러고선 지원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력서를 고치고 자기소개서를 새로 씁니다. 그렇게 준비한 뒤 지원 버튼을 누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인구직의 과정은 이렇습니다.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가 공고를 올렸다면 사람을 뽑으려는 것이고, 지원자가 이력서를 냈다면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사람을 실제로 뽑을 계획이 없거나, 이미 채워진 자리인데도 버젓이 올라와 있는 공고가 있습니다. 이것을 '유령공고'라고 부릅니다. 채용솔루션 업체가 자사 플랫폼 데이터를 분석한 조사도 있습니다. 게시된 공고 가운데 18~22% 정도를 유령공고로 분류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공고는 왜 올라오는 걸까요?
당장은 자리가 없어도 앞으로 필요할 사람의 이력서를 미리 받아두려는 회사가 있습니다. 어떤 수준의 지원자가 들어오는지 시장을 살펴보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부에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을 수도 있고, 내부 직원들에게 곧 인력이 충원될 것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목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사람을 뽑으려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산이 없어지기도 하고, 프로젝트가 연기되거나 내부 인력으로 자리를 채우기로 결정했는데 공고는 안 내리고 그대로 있는 거죠.
모든 유령공고가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실수인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문제는 지원자 입장에서 유령공고가 뭔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원자에게 보이는 것은 똑같은 채용공고일 뿐입니다. 지금 당장 한 명을 반드시 뽑겠다는 회사의 공고도,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한 번 검토해보겠다는 회사의 공고도 같은 모습으로 올라옵니다.
지원자는 그 차이를 모른 채 이력서를 씁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연락이 오지 않으면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경력이 부족했나, 이력서를 잘못 썼나, 나이가 문제인가,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건가. 온갖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지원을 반복해도 계속 결과가 좋지 않다면 이력서와 지원 전략은 점검해야 합니다. 다만 모든 무응답이 나에 대한 평가였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그 회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람을 뽑고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원자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또 아닙니다.
주니어 기획자 공고에 딱 맞는 지원자가 들어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공고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연락을 하고 면접 일정을 잡습니다. 면접 날짜와 시간, 장소를 안내합니다. 면접 전날에도, 면접 당일에도 리마인드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면접 당일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10분을 더 기다리다 전화를 해봅니다. 받지 않습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습니다.
면접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는 면접관들만 회의실에 남아 있습니다.
더 난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면접을 모두 마치고 최종 합격을 통보했습니다. 연봉도 협의했습니다. 출근 날짜까지 정했습니다. 채용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공고도 내렸습니다.
그런데 첫 출근 날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연락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지원자를 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집니다.
지원했다는 사실만으로 이 사람이 정말 우리 회사에 오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 채용 플랫폼의 조사에서 서류 합격 경험이 있는 구직자 가운데 40%가 면접에 불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다른 기업과 면접 일정이 겹친 사람도 있었고, 지원한 뒤 입사할 마음이 사라졌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냥 한 번 지원해봤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지원자는 한 회사만 보고 취업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 회사에 동시에 이력서를 냅니다. 꼭 가고 싶은 곳에도 지원하고, 조금 관심 있는 곳에도 지원합니다. 조건을 정확히 모르지만 일단 지원해보기도 합니다.
지원할 때와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회사 역시 그 차이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원까지 했으니 우리 회사에 오고 싶겠지.'
지원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채용공고까지 냈으니 정말 사람을 뽑고 있겠지.'
둘 다 이상한 생각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상식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회사도, 지원자도 상대방에게 의도를 전부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유령공고와 지원자의 노쇼가 같은 행동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기업과 지원자가 가진 정보의 양도 다르고, 상대방에게 발생시키는 비용도 다릅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채용 기회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개인이 여러 선택지를 탐색하는 일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상대방의 의도까지 전부 안다고 생각하면 틀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채용 공고가 올라오면 사람을 뽑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원자가 지원을 하면 우리 회사에 들어올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은 그랬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만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원을 했는데 연락이 없을 때 모든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력서를 고칠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부족한 경험이 있다면 채워야 합니다. 지원하는 회사와 직무를 다시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점검한 뒤에도 내가 모르는 사정이 상대편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쯤은 남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지원자가 들어왔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면접을 통과하고 연봉까지 합의했다고 해서 반드시 첫 출근 날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보통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모든 상식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채용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