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좀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줘라

팀장이 되기 한참 전에 저는 누군가의 리더였습니다

byNARRIVO
이 과장이 신입 좀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줘라.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팀장이 사수에게 한 말입니다. 그때 저는 스물일곱이었고 사수는 서른둘이었어요. 다섯 살 차이였습니다. 이제 와 보니 사수도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었네요. 저에게는 팀장보다 사수가 훨씬 넘기 힘든 존재였는데 말이죠.

일하는 방법을 전부 사수에게 배웠습니다. 보고서를 어떻게 쓰는지, 현장에서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것만 배운 건 아닙니다. 점심 메뉴 고르는 법, 거래처 사람을 대하는 법, 운전까지 사수한테 배웠어요. 회사에 들어와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옆에서 보고 익혔습니다.

제가 맡은 일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팀장은 저를 직접 부르지 않았어요. 사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사수가 저를 데리고 가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다시 알려줬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지금 돌아보면 제 온라인 게임생활에서 처음 만난 리더는 사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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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서른에 대리를 달았습니다. 박 주임이라고 신입이 한 명 들어왔어요.

사수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박 주임 데리고 다니면서 좀 알려줘라.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제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됐습니다. 실수하면 제가 고치면 됐고 모르는 게 있으면 사수에게 물어보면 됐어요.

박 주임이 온 뒤로는 달랐습니다. 챙겨줘야 할 사람이 하나 생겼어요. 어디까지 했는지 확인해야 했고 잘못한 게 있으면 다시 알려줘야 했습니다. 제가 바빠도 박 주임이 물어보면 먼저 봐줘야 했고요.


무엇보다 박 주임이 일을 잘못하면 저도 같이 불려 갔습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 일만 해도 바쁜데 혹이 하나 붙었네'

그런데 그 혹이 리더의 시작이었습니다. 박 주임이 잘못했는데 제가 같이 불려가는 순간부터 말이죠.


박 주임도 예전의 저와 비슷했습니다. 팀장보다 제 말을 더 잘 들었어요.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 저한테 먼저 물었고 제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았습니다.

박 주임에게도 첫 리더는 저였을 겁니다. 그때 저는 스스로를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작 대리였고 위에는 사수도 있고 팀장도 있었습니다. 리더라고 하면 팀장 정도는 돼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미 한 사람에게 꽤 큰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가르쳐준 것보다 제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운 게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사고가 났을 때의 대응이나 상사의 지시를 어떤 태도로 받는지 같은 것들 말이에요.

제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회사생활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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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저는 팀장이 됐습니다.

팀장이 된 후에는 하루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침부터 누군가와 업무 이야기를 합니다. 끝나면 다른 사람이 찾아와요. 일을 누구에게 맡길지 정하고 진행 상황을 확인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둘 사이에서 조정도 하고요. 각자에게 받은 내용을 모아 정리해서 위에 보고하면 하루가 끝납니다.

하루 종일 일했는데 제가 직접 만든 결과물이 하나도 없는 날이 많았습니다. 실무자일 때는 그런 날을 상상하기 어려웠거든요.


저도 예전에는 팀장들을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하루 종일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많이 할까?'

직접 해보고 알았습니다. 그 이야기 자체가 일이었습니다.

박 주임의 사수일 때는 박 주임만 챙기면 됐습니다. 팀장이 되고 나서는 박 주임이 여러 명으로 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리더의 일은 조금씩 범위가 넓어진 거였어요.



요즘 사람들이 리더가 되기 싫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내 일만 잘하면 되는 때와 비교하면 훨씬 피곤해요.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바카라임져야 합니다. 제가 결정하지 않은 일을 설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상이 바카라임만큼 눈에 띄게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실무자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면 굳이 팀장이 되어 이런 일을 떠안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리더가 되기 싫다고 말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건 대부분 여러 사람을 관리하고 평가하는 팀장이라는 직바카라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처음 리더의 역할을 한 건 박 주임이 들어온 순간이었습니다. 스물일곱의 제가 사수를 보며 회사를 배웠던 것처럼 몇 년 뒤 박 주임도 저를 보며 회사를 배웠습니다.

리더가 되기 싫다고 하는 것과 누군가의 리더가 되지 않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팀장이 되기 전에도 누군가는 이미 내 모습을 보며 배우고 있으니까요.


신입사원 때 팀장이 사수에게 한 말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신입 좀 데리고 다니면서 알려줘라.


그때는 일을 하나 더 준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그날 팀장이 맡긴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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