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신입은 왜 신입으로 돌아가는가?
중고신입이라는 말은 어느새 흔해졌습니다. 이제는 전성시대라는 표현까지 씁니다.
그다지 긍정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신입 공고에 경력자가 몰려서 처음 취업하는 사람들이 불리해졌다거나, 채용 시장의 질서가 흔들린다거나 이럴 때 사용하죠.
이 표현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 있습니다. 경력이 있는데도 신입으로 지원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경로가 아니고, 무언가 감추거나 우회하려는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숫자를 확인하면 조금 다른 얘기가 나옵니다.
한 단체에서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대졸 신입의 28%가 이미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년 새 2% 포인트가 더 늘었다고 해요.
여기까지는 익숙합니다. 그런데 2년 미만 경력이 85%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중고신입이 경력을 감추고 신입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라면, 왜 하필 2년차 미만에 이렇게 몰려 있을까요?
고용노동부 자료를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대졸 정규직 신입의 초임은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 평균 5,001만 원, 30~299인 사업체에서 3,595만 원이었습니다. 같은 신입인데 초봉이 1,400만 원 넘게 차이 납니다. 적어도 경력의 출발점에서는 몇 년의 차이보다 어느 회사의 가격표를 받느냐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기업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매출 500대 기업 대졸 신입의 평균 연봉은 4,671만 원인데, 매출 1~100위권은 5,250만 원, 300위권 아래는 4,305만 원입니다. 매출 500대 기업이라는 같은 범주 안에서도 900만 원 넘게 차이가 납니다.
여기에 채용 방식에 따른 산정 기준이 또 다르죠. 경력직 채용에서는 직전 연봉이 협상의 기준점 가운데 하나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온라인 게임에서 붙은 가격표가 다음 회사의 협상에도 따라오는 거죠. 하지만 신입 채용은 회사가 정해둔 초임 테이블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이상한 구간이 생깁니다. 경력을 인정받고 옮기는 사람보다 경력을 내려놓고 다시 신입이 되는 사람에게 더 높은 가격표가 붙는 구간 말이죠.
돈 얘기만 하면 이 이야기는 그냥 더 좋은 회사에 가려고 신입 공고에 지원했다는 데서 끝납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채용 현장에서 보면 신입으로 들어간다는 건 연봉 말고도 몇 가지를 함께 더 받는 일이더라고요.
특히 공채 문화가 남아 있는 대기업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같은 시기에 여러 부서의 사람을 함께 뽑고, 입사 연도를 기준으로 기수와 동기가 생깁니다. 요즘은 수시채용이 늘면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키워온 조직에서는 입사 시점 자체가 하나의 공통 좌표가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사람들이 함께 있으니 몇 년차에 어떤 역할을 맡고, 언제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지도 자연스럽게 비교됩니다.
그러나 경력 입사자는 사정이 다릅니다. 다른 회사에서 쌓은 2년을 이 회사에서는 얼마만큼 인정해 줄지, 현재 직급과 승진 기준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회사마다 다릅니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한 번의 환산 과정을 거칩니다.
관계도 같이 생깁니다. 같은 해에 들어온 동기들이 다른 팀에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동기들이 각 부서에 자리를 잡고요. 이게 업무 성과로 돌아옵니다. 협조를 구해야 할 때, 막힌 걸 물어봐야 할 때, 어디에 누가 있는지 알아야 할 때 등이요. 직무 역량과는 다른 종류의 자산인데 업무에는 분명 영향을 줍니다.
자기 위치를 설명하는 비용도 다릅니다. 어느 해에 들어온 몇 기인지만 알면 대략 몇 년차인지, 누구와 동기인지가 함께 따라옵니다. 경력 입사자는 그렇지 않아요. 외부 경력이 몇 년이고 그중 얼마를 인정받았는지까지 알아야 지금 어디쯤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입으로 다시 들어가며 얻는 건 신입이라는 직급만이 아닙니다. 공채 문화가 남아 있는 회사라면, 그 회사가 오랫동안 사람에게 값을 매겨온 체계 안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1~2년쯤을 버리는 행위도 달리 보입니다. 다른 회사에서 쌓은 경력을 더 값어치 있는 자리로 바꾸는 셈이니까요.
시간을 치르고 더 나은 출발점을 사는 계산이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계산을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 붙고도 휴학하거나 자퇴한 뒤 다시 수능을 치르는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봐왔죠. 한 해를 잃는 대신 더 높은 값이 붙은 출발점을 얻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중고신입이 낯선 행동은 아닙니다. 익숙한 계산이 취업 시장으로 옮겨온 거예요.
물론 이 계산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나 경력을 내려놓고 다시 신입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미 한 번 경쟁력 있는 자리에 들어갔고, 더 좋은 회사의 신입 채용에서도 다시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합니다. 중고신입은 보편적인 생존법이라기보다 특정 구간에서만 작동하는 계산입니다.
중고신입이 신입 자리를 잠식한다는 말에는 원래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경력이 생기면 경력직으로 가고, 신입 자리는 처음 취업하는 사람에게 남겨두는 질서 말이죠.
그런데 시장이 매긴 값은 그렇게 합리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구간에서는 1년의 경력을 들고 경력직으로 가는 것보다 그 1년을 내려놓고 신입으로 다시 들어가는 쪽에 더 높은 가격표가 붙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 가격표를 보고 움직입니다. 중고신입이 흔든 것은 질서가 아니라 그 질서가 아직 유효하다는 믿음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