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정은 왜 숨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까
https://www.youtube.com/watch?v=RxabLA7UQ9k&list=PLKauI9wxG84m8Fp85oBwgFlYs-pHYltsu&index=11
손편지를 쓰고 싶었다.
편지지를 고르고, 서랍 안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만년필을 꺼냈다. 잉크가 나오지 않는 펜촉을 종이에 몇 번 문질렀다. 첫 문장은 아마도 잘 지냈느냐는 말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정작 묻고 싶은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문장이었다.
바카라상 위에 펼쳐둔 종이 한쪽이 들썩였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종이 아래에 무엇인가 살아 있는 것처럼.
펜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손편지를 쓰려면 먼저 너무 낡아버린 감정을 꺼내야 했다. 오래 접어둔 옷처럼 주름이 깊었고, 한쪽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얼룩이 남아 있었다. 펼치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손을 대자 오히려 더 구겨졌다.
시간이 감정을 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만지지 않는 시간이 감정을 낡게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편지를 포기하고 조금 수월한 그리움을 택했다.
그리움은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창밖을 보며 잠깐 생각해도 되고, 비 오는 날이면 날씨 탓을 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 앞에 내놓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문학적이라는 이유로 가끔 용서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리움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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