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도. 어딘가

가장 조용한 곳에 가장 오래된 시간이 남는다

by적적

https://www.youtube.com/watch?v=ftjEcrrf7r0

햇살에 먼지가 유영하는 곳을 찾아 플레이를 눌러주길 바라



발 씻는 시간을 조금 오래 끈다.

하루 종일 바닥을 견딘 발이 미지근한 물에 잠기는 순간 가장 먼저 풀리는 것은 피부가 아니라 긴장이다. 물은 메마른 굳은살 사이를 천천히 스며들고, 단단히 닫혀 있던 표면은 조금씩 제 결을 드러낸다. 오래 비를 견딘 나무의 나이테가 안쪽부터 짙어지듯, 돌처럼 버티던 살에도 한때는 부드러운 계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기를 모두 닦아내지 않는다. 아주 얇은 습기를 남겨 둔다. 칼날과 피부 사이에 놓이는 마지막 망설임. 너무 마르면 거칠어지고, 너무 젖으면 미끄러진다. 오래 닿는 것들은 늘 그 사이 어딘가의 온도를 필요로 한다.

면도칼을 손끝에 올린다.

쥐지 않는다. 얹어 둔다.



힘이 들어가는 순간 금속은 다른 것이 된다. 살을 다듬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을 재촉하는 칼이 된다. 힘을 빼면 칼은 가장 오래된 결을 따라간다. 살아 있는 것과 지나간 것을 가르는 것은 눈이 아니라 손끝의 떨림이다.

칼날은 발바닥과 거의 평행하게 눕힌다. 너무 세우면 오늘이 아프고, 너무 눕히면 어제가 남는다. 지나온 날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놓아 보내는 각도는 늘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첫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칼끝이 미끄러진다.

긁는 것도 밀어내는 것도 아니다. 오래 붙어 있던 계절 한 장이 조용히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이다. 얇게 말려 올라오는 굳은살은 오래된 종이 같다. 가볍지만 그 안에는 하루로는 셀 수 없는 시간이 접혀 있다.

작은 조각을 바라본다.

저 얇은 껍질은 얼마나 많은 길을 밟았을까.

서둘러 건넌 횡단보도, 비를 핑계 삼아 천천히 걷던 골목, 돌아갈 집은 있었지만 쉽게 들어가지 못했던 저녁. 몸은 말없이 지나갔지만 발은 바닥의 결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어깨에는 오래 참은 날들이 얹히고, 손등에는 반복한 계절이 번진다. 발바닥에는 지나온 방향이 남는다.

굳은살은 두꺼워진 피부가 아니다.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가장 조용한 기록이다.


칼날은 무언가를 없애는 도구가 아니다. 오래 품고 있던 시간을 잠시 펼쳐 읽는 도구에 가깝다. 벗겨지는 것은 껍질뿐인데, 그 아래에서 숨이 조금 깊어진다. 감각이 돌아온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얻는 일이 아니라 오래 덮여 있던 것을 다시 만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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